성지/사적지 자료실

교구 성지명     지역명     내용 검색

안동교구 > 여우목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간략설명 성 이윤일과 서치보 가정에 의해 형성된 교우촌
지번주소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중평리 96 
전화번호 (010)9944-0145
홈페이지 http://cafe.daum.net/Mawon.Jinan
관련기관 마원진안 성지 담당    (054)572-0532
관련주소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청운로 95
성지와 사적지 게시판
제목 신앙의 땅: 안동교구 문경 여우목교우촌~문경관아(24.3km)
이전글 땅에 쓰여진 신앙 이야기: 여사울 성지
다음글 푸른 꿈이 서린 마을 묘재, 푸른 꿈을 살던 남상교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10-02 조회수53 추천수0

[신앙의 땅] 안동교구 문경 여우목교우촌~문경관아(24.3km)


영생을 위해 죽음으로 걸어간 순교자의 길

 

 

- 여우목 성지 십자가의 길.

 

 

안동교구 문경지구에는 건학교우촌, 여우목성지, 진안리성지, 마원성지, 한실교우촌이 있어서 순교자들의 삶을 증거하고 있다. 양업명상센터(담당사제 정도영 베드로)를 운영하며 마원, 진안리 성지를 담당하는 정도영 베드로 신부는 문경지구의 성지 순례를 원하는 신자들에게 1박2일 또는 당일의 도보 성지 순례를 안내하고 있다. 오늘 순례는 여우목교우촌에서 문경관아(현 문경서중학교)까지 순교자들이 포졸에게 붙잡혀 끌려갔던 순교의 길을 되짚어 보는 24.3km 도보 순례이고 ‘순교자의 길 피정’ 코스이다.

 

문경읍 시립문경요양병원 앞에서 7시50분에 출발하는 첫 버스에 몸을 싣고 종점 지역인 여우목교우촌에 도착했다. 대미산 아래 마을 입구 오르막에 ‘여우목교우촌’이라는 표지석이 보이고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돌담 한가운데에 십자가와 아담한 제대가 있다. 십자가 앞에서 건너편을 바라보면 주흘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마을에서 제일 경치가 좋은 곳이에요.” 표지석 옆에서 나물을 캐던 어르신의 말씀이 딱 맞다. “여우목교우촌을 가면 그곳에서 살고 싶을 거예요.”라고 한 신부님 말씀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경치 좋은 곳에서 30여 명의 순교자들이 사지(死地)로 끌려갔다니….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지금은 과수원이 즐비하고 길이 잘 다듬어져 있지만, 옛날 이곳은 척박한 산골짜기였기에 신앙을 지키며 살 수 있었던 산간 오지였다.

 

이곳에 처음 천주교 신자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1839년 기해박해 전후로, 박경화(바오로)와 박양여(요한), 순교자 박사의(안드레아)의 아들이 정착하면서부터이다. 이후 이윤일(요한) 성인과 서치보(요셉)의 가정이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피난을 왔다. 서치보(요셉)은 1841년에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들 서인순(시몬)과 형제들이 이곳에서 살았다.

 

1866년 병인박해 때는 박 요한과 일부 신자들은 황간 상촌으로 가서 충주 포교에게 잡혀 충주 혹은 서울에서 순교하고, 이윤일 성인과 서인순 등 이곳의 신자들은 문경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상주와 대구에서 순교했다. 이윤일(요한) 성인은 전교회장을 지내며 신자들과 함께 30여 호를 천주교로 입교시켰다. 1867년 52세의 나이로 대구 관덕정에서 순교하였으며, 1984년 시성되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충주, 서울, 상주와 대구로 끌려가 순교

 

여우목교우촌의 뒷산(대미산)으로 난 좁은 오솔길로 1.5km를 30분 걸어서 여우목성지에 도착했다. 풀과 나무로 우거진 산길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길로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 길이다. 여우목성지에는 순교자 서인순(요한)과 그의 부친 서치보(요셉)의 묘소, 성모상, 십자가의 길이 있고 십자가를 든 이윤일(요한) 성인의 반신상이 있다.

 

여우목성지에서 다시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졌던 길을 따라 2.5km를 50분 걸어서 ‘홍 베로니카 치명터’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집터와 밭으로 사용되었을 법한 돌 축대가 나온다. 그리고 과수원을 지나 마을로 이어지는 끝자락 즈음에 홍 베로니카 치명터가 있다. 여우목 큰 마을에 살던 홍 베로니카(80세)는 이윤일(요한) 성인 등 30여 명의 교우들과 함께 문경관아로 끌려가다가 순교한다.

 

관아로 끌려가는 중에 자꾸 처지자 포졸들이 구박하며 “죽은 사람을 왜 믿나?”라고 하자 “살아있는 천주님을 어떻게 죽었다고 할 수 있나?” 하면서 말싸움이 붙었고 화가 난 포장에 의해 어처구니없이 죽임을 당했던 순교의 현장이다. 도로 옆 소나무 아래 치명터 주위에는 이름 모를 꽃과 잡초만이 자라있어 허무하기만 하다. 홍 베로니카의 순교를 하느님이 위로해 주시기를 청하며 전날 내린 비로 불어난 시냇물을 조심스레 건넜다.

 

당포공소로 향하는 11.8km 도보길은 다채로웠다. 산굽이를 돌아 접어든 길에서 사과나무와 매실나무를 바라보며 한 줄기 시원한 산바람을 맞았다. 노래가 절로 나오는 지점이다. 짐승을 피해 만든 울타리를 넘어서 소나무 언덕 위에 서자 눈앞에 펼쳐진 하늘재로 통하는 길이 저 멀리 하늘에 닿아있다. 시원하게 몰아치는 바람을 정면으로 받으며 길을 내려갔다. 산티아고 순례를 다녀온 신부님은 이러한 풍광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볼 수 없다고 한다. 순례자의 지친 걸음을 바람마차가 받쳐주는 순간이었다.

 

오른편으로 포암산을 지나며 걷고 걸었더니 이번에는 왼편에서 성주봉이 다가온다. 성주봉은 여인의 풍성한 치마 모양을 닮은 산이다. 도랑을 건너며 발을 적셨고 밭고랑 가에 핀 꽃을 찍으며 흥얼흥얼거렸다. 중평리에서 관음리, 갈평리, 평천리, 당포리를 연이은 길 위에는 햇빛과 바람, 물과 나무, 마을과 사람이 있었다.

 

세 시간 남짓 걸어서 당포공소에 도착했다. 농번기여서 공소의 문은 닫혀 있었다. 성모상에 기도하고 나오는데 입구에 선 종탑 위 십자가가 높다. 공소 옆 정자에서 먹은 신부님 표 김밥 맛은 달디 달았다. 등짐을 가볍게, 마음을 가볍게 지니고 오라고 한 신부님의 배려였다.

 

“피정은 몸과 마음을 가볍게 쉬는 것입니다. 순례자들에게 물 한 병만 가져오라고 당부합니다. 순교자들은 교우촌에 올 때 맨몸으로 왔고 붙잡혀 갈 때 십자가조차 지닐 수 없었어요. 살면서 우리는 많은 걱정을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삶이 지치고 고되다는 것은 짐을 많이 지고 살아가기 때문이겠죠? 걱정을 떼놓으면 짐이 가볍고, 가는 길이 편안해야 먼 길을 갈 수 있어요. 도보순례를 통해서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돈도 지니지 말라. 여행보따리도 여벌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마태오 10.9-10)라는 성경 말씀을 묵상하며 직접 체험하면 좋겠습니다.”

 

 

순교자들의 죽음 헛되지 않게 신앙의 후손답게 살아가야

 

마지막 코스는 문경관아다. 당포초등학교를 지나고 도로와 풀길을 지나니 데크길이 시작되었다. 8.5㎞를 두 시간에 걸었다. 출발지였던 요양병원 앞에 이르자 신부님은 아이스콘을 사들고 와 쉼터에서 잠시 쉬어가자고 한다. ‘아, 그러지 않아도 발가락에 열이 나던 때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체험담은 마지막 남은 길에 생기를 북돋우었다. 문경시장을 거쳐 도착한 문경서중학교는 읍내와 길목들이 잘 보이는 위치에 있다. 운동장 뒤편에는 객사였던 관산지관이 남아있어서 이곳이 문경관아였음을 증명해 준다.

 

밧줄에 묶여 고된 걸음을 옮겼던 순교자들의 목숨이 달린 곳. 문경관아로 지친 몸을 이끌며 끌려온 순교자들은 회유와 고문으로 불안하고 죽을 만큼 고통스런 밤을 맞았을 것이다. 하루 일상을 떠나 가벼운 마음으로 호기심 가득한 채 도보 순례길에 나선 나에게는 박해시대 순교자들의 삶을 떠올리는 것이 편치 않고 두렵다. 그저 산길을 걸으며 희희낙락하고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일상의 작은 어려움 정도를 극복하는 데에 만족하며 사는데, 함께 피 흘리며 죽어가는 동료를 끌어안고 하늘의 문이 열리기를 기도했던 신앙공동체의 끈끈한 형제애를 언제나 깨달을 수 있으랴?

 

순교자 성월을 보낸 우리는 순교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신앙의 유산을 보존하고 기억하여 신앙의 후손답게 살아가야겠다.

 

“위대하신 순교자들이여, 천상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와 함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시어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 주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님, 환난 중에 돌아가신 순교자들이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10월호, 배효심 베로니카(안동 Re. 명예기자)]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Total 0 ]
등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