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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 명례 성지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간략설명 마산교구 첫 본당이자 순교복자 신석복 마르코의 고향
지번주소 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명례리 1122 
도로주소 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명례안길 44-3
전화번호 (055)391-1205
홈페이지 http://cafe.daum.net/myungr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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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정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26호(성당)
성지와 사적지 게시판
제목 순례의 향기: 녹아 사라지는 소금을 꿈꾸는 언덕, 명례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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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10-11 조회수1421 추천수1

[순례의 향기] 녹아 사라지는 소금을 꿈꾸는 언덕, 명례성지

 

 

 

 

하늘과 맞닿은 언덕, 기와지붕 작은 성당은 강을 내려다보고 수백 년은 그 자리를 지켰음직한 아름드리 포구나무는 사방으로 너른 그늘을 드리우고 서 있다.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있으니 강바람이 이마를 간질이고 마음에 고요함이 스며든다. 

 

경남 밀양 낙동강 변 언덕에 자리한 명례성지. 마산교구 이제민 신부는 신석복 마르코 순교자의 생가터를 찾아 성지로 가꾸고 돌보며 순례자들을 맞고 있다.

 

 

기세등등하던 더위가 수그러든 가을 문턱에 찾은 명례성지. 하늘과 바람과 강과 언덕… 아름다운 풍경이 먼저 순례자의 눈길을 붙잡는다. 그리고 이 성지를 지키는 이제민(에드워드) 신부가 푸근한 웃음으로 반긴다. 낡은 밀짚모자 아래 까맣게 그을린 얼굴이 순박한 농부 같다. “올 여름 볕이 굉장했잖아요.” 여름 내내 성지에 잔디를 심고 가꾸느라 생긴 흔적이란다. 이 신부는 성지 곳곳을 차근차근 안내하며 이곳에 깃든 이야기를 들려준다.  

 

경남 밀양 낙동강 변 언덕에 자리한 명례는 조선 후기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살던 마을이다. 그리고 이곳 명례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복자 신석복 마르코의 생가터이다. 소금 행상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신석복 마르코 성인은 강 건너 웅천장에 다녀오는 길에 나루터에서 붙잡힌다. 이 사실을 알고 형제들이 돈을 마련해 달려가지만 “나를 위해 포졸들에게 한 푼도 주지 마라.” 하고는 대구로 끌려가 순교한다. 그 모습을 아내와 세 자녀들이 여기 명례 언덕에서 눈물로 지켜보았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성인의 자취와 향기가 배어 있는 명례 언덕은 숨겨진 보물처럼 오랜 세월 묻혀 있었다. 이제민 신부는 명례 성지가 지금의 모습으로 단장하기까지 놀라운 섭리의 여정을 풀어낸다.

 

 

“나를 위해 포졸들에게 한 푼도 주지 마라.” 하고 기꺼이 순교의 길을 갔던 복자 신석복 마르코의 삶을 묵상하여 만든 조각(임옥상作).

 

2006년 가을부터 이 신부가 잠시 머물던 마산교구 진영성당엔 신석복 마르코 순교자의 묘가 모셔져 있었단다. “당시 신석복 순교자 묘에 자주 들렀어요. 당연히 진영 분인 줄 알았는데 묘비에 명례 출신이라고 씌어 있는 거예요. 한창 시복시성기도를 바치고 있었는데 아무도 이분이 어디서 태어났는지 모르지 뭐예요.”

 

 

명례 언덕에 마련된 야외 제대 너머 성모승천성당의 종탑과 멀리 낙동강이 보인다.

 

안타까운 마음에 이 신부는 신석복 순교자의 생가터를 찾기 시작했다. 제적등본을 확인하니 명례리 1209번지 출생이었다. 그렇게 추적해 찾은 성인의 생가터엔 가축을 키우는 축사가 들어서 있고 주변은 쓰레기장으로 잡풀이 우거져 있었다. 그런데 그 곁에 폐허가 된 작은 성당이 있었다. 알고 보니 경남에서 처음 세워진 성당으로 한국의 세 번째 사제인 강성삼 신부님이 사목하다 돌아가신 곳이었다.  

 

“신석복 순교자 생가 바로 옆에 성당이 세워졌던 거예요. 작고 초라한 성당이지만 역사적, 문화적, 교회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곳이죠.”  

 

2006년 겨울, 생가터를 발견한 후 이 신부는 땅을 매입하기 위해 후원회를 모집하고 폐허가 된 성당을 청소해서 매주 토요일마다 미사를 봉헌했다. 그렇게 4년이 넘도록 틈틈이 찾아가 잡풀도 뽑아주고 성지를 정리하고 가꾸었다. 2011년엔 생가터를 매입하면서 성지에 들어왔고 지금껏 살고 있다.  

 

신석복 순교자가 소금장수였다는 것을 알고 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금 깊이 새기게 되었다는 이제민 신부. 순교의 삶이란 소금의 삶이라 말한다. “소금은 다른 음식물이 제 맛을 내도록 자기가 녹아 사라지잖아요. 자기 존재를 녹이고 자기 존재를 사라지게 하는 것이 순교지요. 너무 자기 맛만 내려 하는 이 시대에 필요한 영성이 아닌가 해요.” 

 

이 신부는 성지를 돕는 후원자들에게도 성지를 찾는 순례자들에게도 ‘녹아 사라지는 소금’이 되자고 거듭 강조한다. 그러면서 명례성지는 어떻게 녹아 사라질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단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녹는소금운동’이다.

 

 

신석복 순교자 기념성당 내부와 야경. 건축가 승효상 씨가 설계한 성전은 장식 없이 단순 소박하며, 주변 자연은 물론 마을과도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성지 조성과 성전건축기금 마련을 위해 소금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그 이익금을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기로 한 것이다. “성전을 다 지어놓고 여유가 있을 때 녹아 사라질 것인가? 아니다 지금부터다, 생각했죠.” 그래서 수익금 전액을 우리 시대 가장 가난한 이웃 중 하나인 외국인 노동자들의 몫으로 돌려주고 있다.

 

 

경남 문화재로 지정된 성모승천성당. 마산교구에처음 세워진 목조성당으로 놀랍게도 신석복 순교자 생가 바로 옆에 지어졌고 수백 년 수령의 포구나무가 그 앞을 지키고 있다.

 

명례성지엔 지난 5월 축성식을 한 현대식 건물인 신석복 마르코 기념성당과 경남 문화재로 지정된 성모승천성당이 함께 있다. 그런데 여느 성지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새 성전은 있는 듯 없는 듯 언덕을 둘러싼 풍경과 자연스레 어우러지고 오래된 목조 성당을 압도하지도 않는다. 이 신부는 새 성당이 옛 성당은 물론 주변 환경과도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수 있었던 이유를 알려준다.  

 

온전히 후원회원들의 기도와 사랑이 담긴 후원금으로 성전을 짓게 되면서 이 신부는 몇 가지 기준을 지켜주십사 건축가에게 요구했다. 크고 화려한 모습으로 자신을 뽐내는 성전이 아니라 성지에 올라오는 순례자들에게 ‘내가 녹아서 사라져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게 했으면 좋겠다고. 언덕 능선도 살리고 하늘도 올려다보이고 땅도 강도 내려다보이는 성당이었으면, 무엇보다 문화재인 작은 성당이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돋보이게 해주었으면, 그리고 주변 마을에 위화감을 주지 않는 성당이길 바랐던 것이다.  

 

“돈이 많았으면 언덕 위에 크고 화려하게 지었을지도 몰라요. 몇 년 동안 어렵게 성전건축기금을 마련하면서 언덕도 사랑하게 된 거죠.” 속내를 털어놓는 이 신부의 눈길에 애틋함이 고인다.  

 

 

- 성지에 올라오는 순례자들이 녹아 사라지는 소금이 되고 싶은 마음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지은 순교자 기념성당과 순교자 기념탑.

 

어느새 10년 가까이 성지지기로 살아온 그가 생각하는 성지는 어떤 곳일지 궁금했다.  

 

“성지는 성인들의 마음을 느끼게 해주는 이야기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명례성지에 오면 소금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 이야기를 나와 결부시켜 소금으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기잖아요. 성지마다 품고 있는 고유한 이야기를 이 시대 영성으로 끌어올려주는 거죠.”      

 

한동안 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했던 빼어난 신학자이기도 한 이 신부는 이제 그야말로 가난하고 소박한 성지지기의 모습이다. 행복하세요, 물으니 서슴없이 “물론이죠! 행복이란 게 그냥 사는 거지요.” 외롭지 않으세요? “외로운 시간이 있으니까 좋지요!”라며 해맑은 웃음을 보인다.  

 

이제민 신부의 욕심 없는 웃음을 마주하며 문득 명례성지의 풍경이 떠오른다. 명례 언덕에선 아무것도 자기를 드러내려 애쓰지 않는다. 큰 성전도 작은 성전도, 하늘도 바람도, 꽃도 나무도 흘러가는 강물도… 서로에게 녹아들어 한 폭의 노래가 된다.

 

[생활성서, 2018년 10월호, 글 신효진 편집장 · 사진 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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