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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 포천 성당(홍인 레오 순교터)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간략설명 홍교만과 홍인 부자 순교자의 정신이 살아 있는
지번주소 경기도 포천시 신읍동 138-32 
도로주소 경기도 포천시 왕방로 191
전화번호 (031)534-0057
팩스번호 (031)534-8988
홈페이지 http://www.pccc.or.kr
관련주소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 723-3(순교터)
문화정보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71호(구 성당)
성지와 사적지 게시판
제목 신앙의 땅: 춘천교구 복자 홍인 레오 순교터 - 춘천교구 최초 순교성지로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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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9-07 조회수238 추천수0

[신앙의 땅] 춘천교구 복자 홍인(레오) 순교터


춘천교구 최초 순교성지로 선포

 

 

춘천교구 최초 순교성지로 선포된 경기도 포천의 복자 홍인(레오) 순교 터를 찾았다. 포천경찰서 옆 한천 변에 자리한 순교 터는 현양비가 세워져있고, 조금은 초라해 보이지만 주변이 잔디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홍인(1758~1802.1.30)은 서울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복자 홍교만(F. 하비에르)의 아들이다. 이들은 한양에서도 이름 있는 양반 집안으로 포천에 이주하여 양근(현 양평)과 광주에 살던 권철신, 권일신, 광암 이벽, 이승훈, 정약종 등과 교류하면서 천주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홍교만은 고종사촌인 권일신(F.하비에르)에게 교리를 배웠다. 홍인은 아버지에게 교리를 배우고 바로 신앙으로 받아드려 미온적이던 아버지를 적극 권면하여 1794년 주문모(야고보) 신부를 찾아가 세례를 받고 미사에 참례하였다. 그 후 홍인은 황사영(알렉시오), 홍익만(안토니오) 등과 교류하면서 포천지역에 복음을 전파하는데 전념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가 시작되면서 이들 집안에 숨겨두었던 정약종(아우구스티노)의 책 상자를 옮기던 신자가 관원에게 발각되면서 이들 부자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어 부자가 함께 체포되었다. 홍교만은 한양으로 압송되어 혹독한 문초를 받았으나 신앙을 굳게 지켜 1801년 4월8일 서소문 밖에서 63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홍인도 경기감영을 거쳐 한양 포도청으로 이송되어 혹독한 문초를 받았으나 끝내 배교하지 않아 사형선고를 받았다. 홍인(레오)의 사형선고문(사학징의)는 다음과 같다.

 

“너는 천주교 신앙에 깊이 빠져 오랫동안 이를 믿어왔다. 너의 아버지가 교리를 가르치고 너는 이를 배웠으며 여기에 깊이 빠져(교리의 가르침을 믿는)마음을 바꾸지 않았으므로 경기 감영에서 포도청으로 이송되었다. 네가 저지른 죄의 실상을 보니 만 번 죽어도 아깝지 않다.”

 

그러나 부자를 같이 처형할 수 없다는 당시의 규정 때문에 홍인은 다시 포천으로 이송되었다. 포천 현옥에서 10개월 동안 옥살이를 하다 1802년 1월30일 44세의 나이로 저자거리인 한내천 변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홍인과 그의 부친 홍교만은 2014년 8월16일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복자로 시복되었다. 춘천교구는 같은 해 9월27일 시복감사 순교자 현양대회에서 복자 홍인(레오) 순교 터(포천시 군내면 구읍리 723-3)를 순교 성지로 선포하였다.

 

춘천교구는 2018년 평신도 희년을 맞아 전대사 순례성지로 지정하여 많은 신자들이 순례하며 홍인(레오) 복자의 순교 정신을 기리며 기도하고 있다.

 

 

두 분 복자가 뿌린 복음의 씨앗 결실 맺어

 

홍교만과 홍인 부자의 순교로 뿌려진 복음의 씨앗은 포천본당의 설립으로 결실은 맺었다.

 

덕정리본당(현 의정부 주교좌성당) 소속 공소였던 포천본당은 1955년 당시 6군단 군단장이었던 이한림(가브리엘) 장군이 군부대의 도움을 받아 포천 지역 어디에서나 잘 보이는 왕방산 기슭에 화강석 조적 구법으로 건축하였다. 1956년 12월 춘천 대목구장 퀸란(T. Quinlan, 구인란) 주교의 주례로 봉헌되어, 1956년 2월 김진하 요한 신부가 초대 주임신부로 부임했다.

 

그 후 운천, 일동, 송우리(현 솔모루)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켜 많은 공소들을 분리한 춘천교구 서부지역, 즉 경기 북부지역 복음화의 산실이 되고 있다.

 

6.25 전쟁 후 군부대의 지원을 받아 지어진 포천성당은 1990년 한 취객의 방화로 목조 마루와 지붕이 전소되어 벽체만 남았지만 역사 보존 차원에서 1992년 새 성전이 완공된 후에도 철거하지 않고 보존해왔다. 구 포천성당은 독특한 건축 양식과 군부대가 직접 세운 것 중 남아 있는 유일한 건물이다.(근대 문화유산 등록 문화재 271호. 2006년 9월16일)

 

신축된 현재 성당에서 사제관 뒤쪽 언덕을 오르면 벽체만 남아있는 옛 성당이 있다. 앞마당에는 잔디가 가꾸어있고 벽체만 남았던 성당은 지붕과 종탑의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이다. 성당 안쪽 마루는 복원되지 않았지만 매주 토요일 성지 순례미사를 봉헌한다.

 

창틀은 타다 남은 목재가 그대로 남아있어 화재 당시의 처참함을 느낄 수 있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홍인(레오)이 옥살이를 했던 관아 터를(포천시 군내면 구읍리 530번지) 찾았다. 관아 터였다는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잡초만 무성한 곳에 포천성당에서 세운 표지석만 세워져 있었다. 초라해 보이지만 성지 조성 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니 머지않은 미래에 훌륭한 성지가 조성되리라 믿으며 순교의 땅 포천 지역에 주님의 축복이 충만히 내리시기를 기도하며 발길을 돌렸다. 복자 홍교만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와 홍인 레오!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9월호, 채용석 베네딕토(춘천 Re.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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