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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 산막골 · 작은재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간략설명 서천 지역 신앙 선조들의 삶의 터전이자 하부내포 선교의 중심지
지번주소 충청남도 서천군 판교면 금덕리 236 (산막골) 
도로주소 충청남도 서천군 판교면 금덕길81번길 117 (산막골)
전화번호 (041)951-2089
홈페이지
관련주소 충청남도 서천군 문산면 수암리 산79-1 (작은재)
성지와 사적지 게시판
제목 신앙의 땅: 대전교구 서천 산막동 성지 - 신앙 선조들의 삶과 신앙이 녹아든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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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2-06 조회수1105 추천수0

[신앙의 땅] 대전교구 서천 산막동 성지 - 신앙 선조들의 삶과 신앙이 녹아든 땅

 

 

- 산막골 표지.

 

 

한겨울 영하의 강추위에 소복이 내린 눈이 얼어 방문을 미루다가 좁은 산속 비탈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니 서천성당(주임신부 김종민 사도요한) 관할 산막동성지(서천군 판교면 금덕리 236)가 나온다. 이곳 성지는 지금은 아무도 사는 이 없는 허름한 집 몇 채와 성지 기념 비석, 최근 세워졌다는 안내소와 간이 화장실이 전부였다. 또 오랜 내력을 말해주는 가죽나무 군락과 감나무는 하늘을 향해 굵직한 가지가 끝없이 뻗어 고요와 정적만이 흘렀다.

 

이곳은 교회사적인 의의로 여러 자료를 통해 2010년 11월 ‘산막골’ 성지로 지정되었고, 2010년 11월13일 ‘줄무덤 터’에서 유흥식 라자로 교구장님 집전으로 ‘산막골 작은 재 줄무덤 터 순교자 현양미사’가 봉헌되면서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또 대전교구에서도 2012년 1월11일 이 지역이 포함된 하부 내포지역 충남 서남부인 서천, 보령, 부여를 ‘하부내포성지’로 선포하고 성지개발과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서천성당에서도 신부님을 비롯하여 사목회장과 성지분과장(박희춘 사도요한)을 중심으로 성지개발을 위한 로드맵을 가지고 ‘땅 한 평씩 봉헌하기’ 등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 결과 2017년 10월20일 산막골 성지 주변의 토지(판교면 금덕리 239 외 3필지 총 1,596㎡)를 구입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이제 본격적인 산막골 성지개발을 위한 새로운 신호탄이 될 것이다.

 

- 산막골 성지 대지 구입.

 

 

다블리 주교와 페롱 신부의 사목 중심지

 

충청남도 서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서천 지역은 일찍부터 천주교가 널리 전파되었던 곳이다. 이곳 산막골 성지는 인적이 드물어 1839년 기해박해 이후 신앙 선조들이 탄압을 피해 숨어 살며 공동체를 이루던 터전이기도 하다. 특히 다블뤼(Daveluy, 1818-1866) 주교와 페롱(Feron, 1827-1903) 신부의 사목 중심지로 밝혀진 성지이다. 다블뤼 주교는 1861년을 전후하여 이곳에서 교우들에게 영세를 준 기록이 전해졌으며, 페롱 신부는 1858년부터 사목의 중심지로 삼은 산막골에서 6통(1958년, 1859년)의 편지를 작성하였다.

 

또 페롱 신부가 사목할 때, 황석두(1813-1866) 루카 성인과 그의 조카 등 일가가 충북 연풍에서 이곳으로 이주하여 병인박해가 있기 전 10여 년 동안 머무르며 참회와 보속의 삶을 살았던 곳이다. 그는 페롱 신부와 다블뤼 주교의 한문 선생 겸 전교 회장으로 여러 지역과 공소를 동행하며 성무를 도왔다. 그러나 산막골성지는 그동안 ‘경북 상주시 모동면의 산막골’로 잘못 이해되어 오다가 페롱 신부의 집주인이며 복사로 봉사했던 황기원, 황천일 등이 거주했던 곳이 바로 이곳 서천의 산막골로 드러났다.

 

- 작은재 줄무덤으로 연결되는 고갯마루.
 

 

산막골에서 차로 6㎞의 농로를 돌아가면 천방산 기슭 줄무덤터 광장(문산면 수암리 산 79-1)의 고갯마루에 이르고 바로 ‘작은 재 공소’(판교면 금덕리 41)로 연결된다. 이 공소는 박해시대 서울, 경기 내포지역 신앙의 선조들이 박해를 피해 서천으로 낙향하여 판교면에서 문산면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터를 잡고 살았던 곳에 공소를 지어 공동체를 이루며 신앙의 버팀목이 되었던 곳으로 지금은 보호수로 지정된 살구나무 2그루만 있다.

 

또 ‘작은 재 공소’와 ‘독뫼 공소’(문산면 수암리 566-4)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와 연결된 ‘줄무덤 터’는 두 지역 신자들의 만남의 장소였다. 순교자 현양미사가 봉헌된 이곳은 기해박해(1839년)와 병인박해(1866년) 때 순교한 신자들의 무덤 30여 기가 발견되었던 곳이다. 이곳을 지난 1994년 천방산의 산림 도로를 포장하면서 파묘했을 때, 많은 유해와 십자가, 묵주 등 성물들이 발굴되어 순교자들이 묻혀 계신 거룩한 땅으로 밝혀졌으나 뚜렷한 연고가 없다는 이유로 인근에 다시 매장되었는데, 현재는 그 위치 조자 파악할 수 없으니 신앙 선조들에게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작은 재 공소와 독뫼 공소를 이어주는 ‘줄무덤 터’

 

또 ‘줄무덤 터’에서 0.9Km 정도를 내려오면 ‘독뫼 공소’가 있다. 이곳은 조선 후기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박해가 심해질 무렵 서울 경기지역은 물론 상부내포지역(충남 서북부) 신자들이 함께 모여 숯을 굽고 옹기를 만들며 함께 처절하게 신앙생활을 했던 마을이다. 2008년 서천성당으로 부임한 정성용 신부는 신자들과 함께 이곳에 성모동산과 십자가의 길 등을 조성하여 많은 이들이 성지 순례를 하며 선조 신앙인들의 발자취를 따르도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자료에 의하면 서천지역에서 박해시대에 순교하신 분이 57명으로 기록되었고, 124위 복자 중에 보령지구(서천 근교) 출신이 9명이며 서천에는 공소가 22곳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처럼 산막골 성지 주변은 신앙 선조들의 삶과 신앙이 고스란히 녹아 흐르는 은혜로운 땅이다. 오직 하느님만을 경외하고 무수히 많은 피를 흘렸던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의 유해가 묻혔던 곳이고 신앙 선조들이 치열하게 신앙을 지켰던 터전임에도 그동안 이곳이 성지인지 조차 몰랐던 것이다.

 

역사가 깊은 서천성당(1936. 5. 15.설립)은 서면성당과 한산성당을 분당시켰고, 2006년에 새 성전을 지어 하느님께 봉헌하는 등 어려운 일들이 많았다. 신자들이 주로 농업에 종사해 현실적으로 어려운 여건이지만 현재 ‘산막골’ 성지개발을 위해 정성된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대전교구 해미?솔뫼 성지를 방문하신 후로 성지에 대한 충남도청과 서천군청에서 지원을 시작하였고, 일반인들의 관심도가 높고 우호적이라고 한다.

 

김종민 신부는 “새해부터는 산막골 성지에서도 이제 순교자의 삶과 표양을 따라 살 수 있도록 기도할 수 있는 공간과 십자가의 길 등 성지 순례의 길이 조성되어 순교자들의 신앙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많은 기도를 부탁했다. 고르지 못한 날씨에 성지를 안내해주신 이계황 총회장님과 박희춘 성지 분과장님에게 감사드린다.

 

- 성지개발 후원 : 신협 131-016-828456(예금주 서천천주교회)

- 서천성당(cafe.daum.net/scdaegun) 사무실 ☏ 041-951-9014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2월호, 이인자 엘리사벳(대전 Re.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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