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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 복자 윤봉문 요셉 성지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간략설명 거제도에 믿음의 씨앗을 뿌린 순교자의 새 안식처
지번주소 경상남도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리 1176-1 
도로주소 경상남도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3길 69-22
전화번호 (055)682-1898
홈페이지 http://cafe.daum.net/yoonbongmoon
관련기관 옥포 성당    (055)687-2347
관련주소 경상남도 거제시 옥포로12길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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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앙의 땅: 거제도 윤봉문 요셉 순교성지와 옥포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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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1-05 조회수226 추천수1

[신앙의 땅] 거제도 윤봉문 요셉 순교성지와 옥포성당


유배의 땅 진목정에 싹튼 신앙

 

 

윤봉문 요셉 순교성지를 도보 순례한 마산 레지아 평의원들.

 

 

거제도에 언제부터 천주교가 전래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1801년 신유박해의 영향으로 두 분의 신자가 거제도로 귀양 왔다는 것이 기록으로 남은 최초의 사건이다.

 

첫째 분은 1801년 순교한 황사영의 모친 이윤혜이다. 기록에 의하면 황사영이 죽은 후 그의 재산은 몰수되었고 그의 처 정난주 마리아(정약현의 딸)는 제주도로 귀양 갔고, 아들 경한은 추자도로, 그리고 모친은 거제도로 귀양 갔다고 한다. 그러나 모친 이윤혜의 세례명과 또 거제도 어디에서 살았는지 기록이 없다. 다만 거제도 어딘가에 죄인의 몸으로 정착한 후 기도로서 일생을 보낸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두 번째 분은 전주 감영에서 순교한 유항검의 막내아들 유일석(세례명 모름)이다. 유항검이 순교한 후 유일문은 신지도로, 따님 유섬이(당시 9살, 원래 흑산도로 귀양 보낸 것으로 전해졌으나 훗날 묘지가 거제에서 발견됨에 따라 거제에서 일생을 보낸 것으로 확인)와 막내 유일석(당시 3살)은 거제도로 귀양 왔다고 한다. 이 어린 생명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몰랐는데 이순이의 옥중서한으로 이들의 행방을 알게 되어 뒷날 밝혀진 두 분의 형극의 삶이 거제도 포교의 거름이 되었다고 믿고 있다.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는 국산성당 입구 돌기둥(좌, 위에 희미하게 ‘천주당’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거제 천주교 도입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기념탑(우, 국산 구 성당 내에 세워져 있음)

 

 

첫 전교자 윤사우 스타니슬라오와 첫 교우 진진보 요한

 

신유박해의 결과 두 분의 순교성인 가족이 거제도와 인연을 맺었다면 본격적인 거제 선교의 출발은 1866년에 일어난 병인박해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충청지방 신자들은 문경새재를 중심으로 소백산맥 속으로 깊숙이 들어갔고, 전라도 지방 신자들은 덕유산을 넘어 경상도 서북쪽 지방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이때 윤사우(복자 윤봉문 요셉의 부친)는 원래 경북 영일 사람으로 박해를 피해 거제 북쪽인 유호리와 외?덕포에 잠시 살다가 진목정(옥포)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필묵 행상으로 어렵게 살던 그는 어느 날 진 씨라는 접장(보부상의 우두머리)을 만나는데 그가 훗날 거제도의 첫 신자가 되는 진진보이다. 신앙을 받아들이기로 한 진진보는 교리 공부 후 윤사우와 함께 경북 성주로 가서 요한으로 세례를 받았으며, 그의 딸 순악(아네스)을 윤사우의 둘째 아들 윤봉문 요셉과 혼인을 맺도록 했고, 큰아들 윤경문 베드로도 그 마을 신자인 주또금(아델라)과 혼인하도록 주선하여 신자 집안이 많아지도록 하게 되었다.

 

 

복자 윤봉문 요셉

 

1887년 윤봉문은 자기가 가르쳤던 15명의 예비자를 대구에 있던 로베르 김 신부를 모셔와 영세시켜 거제 땅에 복음의 씨앗이 내리게 된다. 로베르 김 신부가 떠난 후 이 마을에 서로 고소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나졸들이 이들을 잡으러 다녔다. 이때 요셉은 대구로 가던 중 우연히 병에 걸려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포졸들이 많은 교우를 잡아 문초하려던 때였다.

 

요셉이 “죄 없는 교우들을 풀어주고 회장인 나를 잡아가라”하며 “부모처자 다 변하여도 우리 천주 믿는 마음 변치 말자” 라고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쓰고 “교우들이여 나는 이제 주님 앞으로 나아간다. 이는 오직 내 고장 거제를 위함이다.”하며 하직 인사를 나누고는 피 흐르는 손으로 당당히 십자성호를 긋고 체포되어 통영 감영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감영에서 그는 많은 문초를 당하며 교수형으로 사형을 당하니 때는 1888년 2월 22일이요 그의 나이 37세였다. 이후 요셉의 아들 윤학송 루카가 1896년 장재리에 묻혀 있던 부친의 시신을 진목정(옥포) 건너편 쪽박골 산 위에 안장하였다.

 

거제 옥포성당 및 기념탑.

 

 

거제도 최초의 성당

 

1886년부터 진목정 진요한의 집을 경당으로 사용하면서 시작된 거제지역의 공소는 1923년 9월25일 그 경당을 기와집으로 짓고 당시 안 주교님과 두 분의 신부님도 함께 방문하여 미사를 집전하면서 공소 헌당식을 거행하였다. 이날은 마침 한가위 날이라 200여 명의 신자가 모였고 경당 수호자로 로사리오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를 정하였다. 이날 115명의 신자가 고해성사를 봤으며 더욱이 30명의 신자가 견진성사를 받는 은총을 받았다.

 

1926년 5월30일 삼위일체 대축일에 진목정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어 김후상 바오로 신부가 초대 신부로 부임하게 되니 이로써 국산(현 거제 국산동)성당이라는 본당 이름으로 거제도의 최초 성당이 된 것이다. 그 후 1933년 국산성당 신자들은 건평 50평의 콘크리트 성당과 사제관 및 부속 건물 2동을 더 건립하여 교세를 늘려 가는 데 힘썼으나 이후 점차 이농 현상으로 인구가 감소 되고 교세가 약해지자 다시 공소로 전락 되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다.

 

하지만 경제 부흥과 발맞춰 거제지역에 조선업이 활발해지면서 옥포지역에 많은 근로자와 가족들이 유입되면서 신자 수가 증가하니 교구에서는 1980년 옥포성당의 건립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윤봉문 요셉의 유해가 안장된 진목정(옥포) 지역에 드디어 새 성전 건립을 시작하였다. 1982년 성전 신축공사를 시작하여 1983년 11월2일에 옥포성당으로 성전이 준공되었다.

 

그리고 1988년 그 성전 옆에 순교자 윤봉문 요셉 순교 100주년 현양 대회를 개최하고 기념탑을 세워 목숨을 바쳐 신앙을 지킨 순교자의 덕을 찬양하고 이를 통하여 지역 신자들의 신앙쇄신과 지역 복음화에 빛이 되고 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1월호, 김영수 그레고리오(마산 Re.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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