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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 제물진두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간략설명 선교사들의 선교활동 거점이자 인천 지역 최대 순교 터
지번주소 인천시 중구 항동1가 1-13 
도로주소 인천시 중구 제물량로 240
전화번호
홈페이지 http://cafe.naver.com/jemuljin
관련기관 해안 성당    (032)764-4191
관련주소 인천시 중구 차이나타운로59번길 4
성지와 사적지 게시판
제목 신앙의 땅: 인천교구 제물진두 순교성지 - 서양세력과 천주교 막으려 택한 공개 처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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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06-12 조회수112 추천수0

[신앙의 땅] 인천교구 제물진두 순교성지


서양세력과 천주교 막으려 택한 공개 처형장

 

 

인천광역시 중구 제물량로 240 차이나타운 입구 중국문화원과 상가 사이 좁은 대지위에  조그마하지만 의롭게 하늘을 향한 십자가를 마주한다. 이곳이 제물진두 순교성지다.

 

제물진두 성지는 다른 순교지보다 더 많은 순교자가 처형된 순교 터이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성지로, ‘진두(津頭)’는 곧 나루터로, 강이나 내 또는 좁은 바닷목에서 배가 건너다니는 곳을 말한다. ‘제물진두’는 외국 선박 선원들과 접촉을 시도하는 군중들의 왕래가 잦은 곳으로, 이곳에서 공개적인 처형을 함으로써 서양 세력을 배척하고, 천주교를 막으려는 효과를 극대화 하려 했다.

 

‘제물진두’는 대원군 정권이 프랑스와의 병인양요, 미국과의 신미양요 등을 치른 후 병인박해 때 적과 내통한 천주교 신자를 처형하여 주민들에게 경계심을 준다는 의미에서 서울 한강변의 양화진두 ‘절두산’과 함께 천주교 신자들의 공개 처형장으로 택한 곳이다.

 

1868년 4월15일에는 부평 읍내에 살던 손 베드로 넓적이(박순집의 이모부, 1801~1868), 김씨(손 베드로의 부인, 박순집의 이모, 1811~1868), 백치문(사도요한, 손 베드로의 사위, 1827~1868)은 포졸에게 잡혀 서울 포도청에서 신문을 받고 인천 제물포로 압송되어 제물진두에서 4월20일 참수형을 받아 각각 68세, 58세, 42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또한 인천 지역에서의 박해는 1871년 5월17일경에 남양에 살던 이승훈(베드로 1756~1801)의 증손자이며 이재의(토마스 1808~1868)의 두 아들 이연구, 이균구가 인천 바닷가에서 미군 함정을 살피다가 체포되어 미군 배에 들어가 길을 안내하였다는 죄목으로 효수경중(목을 잘라서 매달아 군중에게 경각심을 줌)을 받아 순교하였다.

 

같은 해 5월21일에는 인천에 살던 이재겸(이승훈의 손자 이신규의 아들)의 부인 정씨(이승훈의 손부이며 이신규의 자부), 이명현(정씨의 손자), 백용석, 김아지(김애기) 또한 사학죄인으로 이곳에서 효수로 순교하였다.

 

최근 연구에서 추가로 순교자로 확인된 이 마리아의 손자를 포함하여 제물진두에서 10여명이 처형되었다.

 

 

제물포항은 개항기 선교사들이 입출국 하던 조선교구의 관문

 

제물진두는 많은 순교자가 공개 처형된 곳임에도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2010년 인천교구 성지개발위원회 부위원장이었던 고 김진용 마티아(2012년 선종) 씨가 위치를 규명하여 이듬해 성역화 작업에 매진해 경당을 세웠고, 2014년 5월15일 교구장 최기산 보니파시오 주교와 총대리 정신철 주교 공동 집전으로 제물진두 순교기념 경당 축복미사를 봉헌하였다. 인천 차이나타운 입구 한중문화회관 우측에 15m 높이로 건립된 경당 외관은 하늘을 향해 피어오르는 꽃모양이자 하느님께서 순교자를 감싸는 두 손 모양을 형상화하였다.

 

벽면에 적힌 순교자 명패를 따라 좁고 긴 입구를 들어가면 작지만(30여 명 수용) 아담한 경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제물포항 개항 이후 선교사들이 조선에 입국하기 위해 제물포항을 통하였고, 7대 조선교구장 이였던 블랑 주교의 요청으로 조선 선교 사목을 위해 조선 첫 수녀회인 샬트르 성바오로회 수녀님들(프랑스인 2명, 중국인2명)이 입국한 곳이다. 제물포항은 개항기 선교사들이 입출국 하던 조선교구의 관문 역할을 하였고, 이에 따라 제물포본당(현 답동성당)을 설립하게 되었다.

 

현재 성지 관할은 바로 옆의 해안성당(주임신부 고동수 바오로)이 하고 있다. 성지 옆쪽에는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살피며 묵상할 수 있는 교육 공간인 제물진두 순교자 영성관이 있어 순례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지친 삶을 위로하는 오른팔이 아래로 내려진 십자고상

 

1960년 이곳 차이나타운에는 4000여 명의 중국 화교가 거주하였고, 소수의 화교 가톨릭신자들은 답동성당을 찾았는데, 화교 신자들의 언어 소통과 민족 이질감으로 화교들을 위한 성당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이에 따라 1960년 6월9일 미국 메리놀회에서 화교를 위한 선린성당을 설립하였는데 이것이 오늘의 해안성당이 되었다.

 

성지 경당 입구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십자고상이 모셔 있다. 십자고상의 예수님은 오른팔이 아래로 내려져 있는데  고상 하단에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사랑하는 아들아, 딸아 힘드니? 내 손을 잡아라! 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노라. 힘을 내라! 내가 삶에 지쳐 힘들어 할 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곳 순교자들이 예수님 안에 머물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사랑했기에 천상의 기쁨을 얻은 것처럼 절망과 아픔의 역경 속에서도 늘 나에게 손을 뻗어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손을 잡고 힘내어 살라는 뜻으로, 여기 제물진두 성지에는 나에게 오른팔을 내려 뻗으시는 십자가 위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작고 협소한 성지이지만 이곳에서 목숨 바쳐 주님을 따른 순교자들이 피로써 신앙을 증거한 거룩한 땅입니다. 아직까지는 교구의 신자들조차 이곳 제물진두 성지가 신앙 선조들이 숭고한 삶을 마친 성지임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웅장하고 넒은 땅의 성지는 아니지만 우리 모두가 순교자들의 높은 신앙심을 본받아야 하는 그야말로 성스러운 이곳에 많은 신자들의 관심과 성지 순례의 발길이 이어지길 바란다.

 

<평일 화~토 오전 11시 미사, 일요일은 미사 없음>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6월호, 정광연 필립보(인천 Re.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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