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초대 교회 친교 공동체, 푸덴스의 가정 성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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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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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8-10-11 | 조회수663 | 추천수0 | |
[구석구석 로마 구경] 초대 교회 친교 공동체, 푸덴스의 가정 성당
초세기 교회는 사도들의 설교에 감명을 받아, 회개하여 세례를 받은 신자들이 자신들의 가정에 다 함께 모여 친교를 나누던 가정 교회(Domus Ecclesiae)였다. 이는 ‘로마의 평화(Pax Romana, B.C. 27-A.D. 180)’란 허울 좋은 미명아래 로마 제국의 속박 아래 놓여 있던 팔레스티나 지방의 교회 모습이기도 하다. 사도행전이 전하는 이상적인 교회 모델인 가정 교회는 제국의 변방인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로마의 평화’의 중심인 수도 로마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오늘 우리가 찾을 교회인 ‘로마의 성녀 푸덴찌아나의 바실리카(Basilica di Santa Pudenziana in Roma)’는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의 하나로서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가 방문했던 가정 교회였다.
성녀 푸덴찌아나는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편지에 언급된 성 푸덴스(San Pudente, 2티모 4,21 참조)의 딸로서 16세의 어린 나이에 순교했다. 전승에 따르면 푸덴스는 로마 원로원 의원(Senatore) 가운데 한 명으로서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의 친구로 소개된다. 푸덴스와 식구들은 사도들의 설교로 모두가 회심하여 세례를 받고 그들의 집을 신자들이 친교를 나누는 가정 교회로 봉헌하였다. 그리하여 푸덴스의 집은 사도들의 로마 선교 전초 기지이자 신자들과 함께 빵을 떼어 나누던 친교의 장으로서 역할을 했다. 이후 이 가정 교회는 비오 1세 교황 때(재위 A.D. 140-155) 회심한 이들의 세례와 신자들의 미사를 위한 공간으로 쓰였다. 당시 이 집의 공식 명칭인 푸덴스의 가정 성당(la chiesa domestica di Pudente)이 이를 증언한다. 비록 지금 교회의 모습에서 사도들이 활동한 가정 교회의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근래의 발굴 결과 현재 성당의 9미터 아래에서 그 당시 가정 교회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지금 남은 성당 모습은 4세기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입구를 들어서면 세 부분으로 나뉜 교회 내부(tre navate)를 확인할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세월의 흐름과 함께 이어져 온 파괴와 복구의 과정은 교회의 원래 형태를 많이 훼손시켰다. 하지만 교회 내부를 삼등분하는 벽의 건축 양식에서 교회의 옛 모습을 엿볼 수 있는데 벽을 세우기 위해 벽돌을 쌓아 올린 건축 양식은 우리에게 4세기경 교회가 지어질 당시의 모습을 증언한다.
초세기 가정 교회에서부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성녀 푸덴찌아나 교회에서 우리는 구원자이신 예수와 그 영광을 함께 하는 사도들과 순교자들의 영광스러움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영광스러움을 결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을 버리지 못한다면, 우린 자신의 헛된 영광만을 드높일 뿐 참으로 영광 받으셔야 할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높일 수가 없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바친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 위에 세워진 한국 교회가 자신의 헛된 영광이 아닌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높이는 참된 교회가 되길 기도하며 발걸음을 돌려 본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8년 가을호(Vol. 43), 글 · 사진제공 강찬규 포에멘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