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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데가르트(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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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힐데가르트 (Hildegard)
축일 9월 17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수녀원장, 신비가, 교회학자
활동지역 빙겐(Bingen)
활동연도 1098-1179년
같은이름 힐데가르다, 힐데가르데, 힐데가르드, 힐데가르디스, 힐데가르타
성지와 사적지 게시판
제목 심리학자가 만난 교회의 별들: 중세를 밝힌 신비로운 불꽃 빙엔의 힐데가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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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08-13 조회수893 추천수0

[심리학자가 만난 교회의 별들] 중세를 밝힌 신비로운 불꽃 빙엔의 힐데가르트

 

 

독일 서부 라인 강가의 작은 마을 빙엔의 힐데가르트 성인(1098-1179)은 한국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사실 다빈치 못지않게 (혹은 그를 뛰어넘는) 다양한 방면의 천재로 신학은 물론 약학, 의학, 음악, 미술 등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지만, 여성인데다 주류에서 살짝 빗겨난 탓인지 그가 이뤄낸 성취만큼 의학자나 신학자들로부터 관심을 받진 못했다. 다행히 최근 들어 여성주의 신학자나 역사가들이 그 진가를 새롭게 재해석하고 있다.

 

성인은 가난한 귀족 가문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병약하게 태어났다. 신심 깊은 부모는 그를 하느님께 봉헌하고자 열네 살이 되자 디시보덴버그(Disibodenberg) 수도원에 입회시킨다. 디시보덴버그 수도원은 수사와 수녀가 같이 머무는 곳이었는데, 평생의 스승이자 벗인 유타(Jutta) 수녀를 만나 보호와 지도를 받으며 수도자로 성장한다. 후에 여성주의 역사가들이 유타와 힐데가르트의 관계를 여성간의 이상적인 한 귀감으로 자주 언급할 만큼 서로에게 좋은 도반이었다. 아쉽게도 유타 수녀는 힐데가르트가 서른여덟 살 무렵 먼저 세상을 떠나고 그 자리를 이어받아 수녀원을 관장하게 되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많은 업적을 세상에 내놓는다. 하지만 수도원을 운영하며 구노 수도원장과 마찰이 생겼고, 위중한 병을 앓는 중에도 자신을 따르는 20명의 수도자와 함께 훨씬 더 척박한 땅에서 온전히 자신만의 가난한 삶을 다시 시작한다.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여성의 독립적인 수녀원이었다. 또 여러 지방을 여행하면서 자신의 의학과 약초에 관한 지식, 음악작품 등을 나누는 등 그만의 족적을 남기기도 했다.

 

- 힐데가르트 성인이 자신의 환시체험에서 만난 신비로운 상들을 표현한 그림들. 좌측 그림에서는 성부, 성자 안에 인간을 소우주로 표현하고 있다.

 

 

성인은 다섯 살 때부터 환시체험(Vision)을 했는데, 보이는 이미지뿐 아니라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질 수 있는 생생한 체험이었다고 한다. 이 체험을 두고 소발작 같은 뇌전증 증상이 아니었을까 의심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힐데가르트 성인의 체험은 그런 질병에서 흔히 나오는 내용이 아니라 매우 아름답고 잘 정리된 종교적인 내용이었다. 본인이 명징한 의식 속에서 성스러운 상들을 보았다고 고백했는데, 뇌파의 이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다. 힐데가르트 성인은 자신이 본 신비한 상들을 그림으로 남겼는데, 마치 불교의 만다라 상처럼 원 속에 여러 성스러운 상징들이 가득 들어 있다. 또 성인의 저작 중에는 하느님과의 일치를 시편이나 아가의 분위기와 비슷하게 온몸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한 것도 많다. 논리적이고 언어적인 영역에 천착하던 당시 중세 철학자들과 달리 독특한 이미지와 감각을 토대로 이른바 시각적 신학(visionary theology)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점, 음악과 미적인 상징을 이용하여 죄의 사함, 보속, 부활 등의 과정까지 표현하며,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 하느님의 존재를 체화하는 신비를 신학의 영역에 포함시킨 사실도 현대에 다시 주목받는 이유다.

 

심리학자 칼 융은 이런 힐데가르트의 신비체험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특히 우주의 핵(Egg of the universe)으로 해석되는 힐데가르트의 그림으로 연금술 이론을 심리분석 과정과 연결시켜 설명했다. 불교의 만다라 상징과 힐데가르트 성인의 그림이 개성화과정의 상에 가장 근접해 보인다는 평을 융 분석가들에게 받기도 했다. 꽤 여러 지역을 다니며 강연도 하며 나름 유명세를 탔던 힐데가르트 성인이 후대 연금술사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예컨대 성인의 기록과 연금술의 경전들을 비교해 보면 동일하게 인간을 소우주(microcosmos)로 세계를 대우주(macrocosmos)로 묘사한다. (방탄소년단의 노래 제목 중 하나가 소우주(microcosmos)다. 혹시 작곡가가 힐데가르트가 작곡한 성가와 성극들을 알고서 그를 흉내 낸 건 아닌지 궁금해진다.)

 

힐데가르트는 성스러운 환시체험 중에 들은 곡조와 내용을 그대로 현실세계로 옮겨 와 매우 아름다운 음악과 연극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특히 어려서부터 다윗이 탔던 수금과 비슷하다 여겨지는 솔트리(Psaltry)를 매우 잘 다루었다고 전해진다. ‘Ordo Virtutum’(도덕극-덕을 찬미하는 노래)으로 알려진 성인의 음악은 멜리스마(melisma), 즉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카덴차와 유사한 형태로 비교적 단조로운 중세 음악들과는 달랐다. 조용한 수도원에서 파격적이고 화려한 실험적 형식의 음악을 작곡했다는 것은 정신세계가 그만큼 자유로웠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오페라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극을 만들기도 했고, 도덕적인 내용을 희곡으로 쓰기도 했으니 엄청난 창조적 에너지를 갖고 있던 예술가라고도 할 수 있다.

 

평생 병과 씨름했기에 의술과 약초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많았던 것일까. 힐데가르트 성인은 요즘 들어 의학사에서도 더 주목받는 의학자이며 약학자이다. 얼마 전까지는 주류 역사학자들이 힐데가르트 성인의 경험적 약초학을 상대적으로 경시했던 면도 있다. 사실 힐데가르트 성인뿐 아니라 많은 여성들이 약초를 재배해서 처방하고 간호사와 산파 역할을 했음에도 충분히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이들은 심지어 중세 말에서 19세기까지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힐데가르트의 의학적 성취나 활동이 과거의 지식인뿐 아니라 대중에게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무엇보다 힐데가르트는 대학이라는 상아탑에 고립되어 오래된 고문서를 토대로 이론을 연구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환자를 치료하고 건강한 사람들을 돌보고 관찰하는 경험적 의학을 실천했다. 특히 감염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해 물을 꼭 끓여야 하고 어떤 질병에도 반드시 원인이 있다고 주장했던 점은 그가 환자를 돌보면서 관찰한 체험의 결과였다. 또 직접 농사를 지어 여러 약초를 재배하면서, 창조의 힘과 생명의 힘이 담긴 ‘녹색 생명력(viriditas)’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생태학자들에게도 주목받고 있다. 힐데가르트 성인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아름다운 장소에 자리 잡은 피정의 집이나 수도원이 많지 않았을 것 같다. 지리학에도 관심을 보여 네 방향이 각각 지리적으로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고 했고, 성인이 세상을 묘사한 그림들은 모두 지구를 일종의 공처럼 그려서, 어떤 맥락으로 그런 그림이 나왔을까 궁금해진다. 환시를 통해 갈릴레오 이전부터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훨씬 전부터 알고 있지 않았을까 혼자 상상해본다.

 

다양한 관심과 업적을 한마디로 요약하긴 어렵지만, 여러 분야에 걸친 성인의 핵심적인 철학은 “균형 회복하기”였다. 지나치게 정신적인 부분만 강조해서 육체를 학대하고 망가뜨리는 삶이나, 본능적인 만족만 따라가다 정말로 중요한 영적인 측면을 놓치는 삶이 아니라 육체와 영혼이 모두 건강한 균형을 지향하는 것이다. 사람은 좋아하는 무언가에 집중하다 보면 나머지 부분을 소홀히 하고, 싫어하는 무언가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일단 나쁘다 매도하기도 한다. 잘하는 것은 계속 더 하고, 못하는 것은 무서워서 피하다 보면 자신의 숨은 능력을 놓쳐버릴 수도 있다. 전체적인 것을 조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작은 것에만 집착하는 ‘나(ego)’의 입장이 아니라, 세상 만물을 다 볼 수 있는 ‘절대자(the Absolute)’는 어떻게 생각하실까 묵상하다 보면 일그러진 자기 모습을 객관화시켜 균형을 회복할 수 있다. 힐데가르트 성인도 비전과 기도를 통해, 작은 ‘나’가 야기하는 불균형과 부조화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힐데가르트 성인은 평생 병마에 시달렸지만 명철한 인식체계를 지켰고, 척박한 여건에서도 재능을 키웠다. ‘하느님’과 하나 되기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더 낮은 위치에서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천재였지만 겸손했고, 병약했지만 더 깊은 인내심을 발휘했다. 신비체험으로 미래를 볼 수 있었으나 현재에 충실했고, 약함으로 강함을, 가난으로 고귀함을 성취했으며, 이론이 아닌 행동으로 사랑을 실천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큰 힘이 된다. 여성에게는 개별적인 지적 활동이 허락되지 않았던 중세시대, 자신만의 목소리로 방대한 궤적을 남긴 삶, 어쩌면 그 자체가 수식이 필요 없는 기적 그 자체일 것 같다.

 

* 이나미 - 신경정신과 전문의. 미국 융 연구소와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원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이자 인권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행복한 부모가 세상을 바꾼다』 『운명에서 희망으로』 『성경으로 배우는 심리학』 『한국에서 심리학자로 살아보니』 등 다수가 있다.

 

[생활성서, 2019년 8월호, 이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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