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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막달레나(7.22)

마리아 막달레나(7.22)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인쇄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마리아 막달레나 (Mary Magdalen)
축일 7월 22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신약인물, 예수의 제자, 부인
활동지역
활동연도 +1세기경
같은이름 마들렌, 막딸레나, 메리, 미르얌, 미리암
성지와 사적지 게시판
제목 작가를 감동시킨 작품: 헨델의 첫 번째 오라토리오 시간과 깨달음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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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10-12 조회수2634 추천수0

[작가를 감동시킨 작품] Vanitas Vanitum : 헛된 것들의 헛됨

 

 

마리아 막달레나의 오라토리오라고 불리는 헨델의 첫 번째 오라토리오 <시간과 깨달음의 승리> 아리아 <울게 하소서>의 원작이 담긴 첫 오라토리오.

 

프랑스 바로크 화가인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 1593-1653년)의 유명한 작품 중의 하나인 “회개하는 마리아 막달레나”(The Penitent Magdalen, 1640년경).그림1) 뉴욕 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에 전시되어 있는, 가로와 세로 길이 1미터가 넘는 이 강렬한 그림은 ‘촛불’을 자주 사용하여 명암(chiaroscuro)을 강조하는 그의 특유의 스타일이 잘 나타난다. 모든 세상 것을 버리고 귀한 하늘의 것으로 향하는 아름다운 막달레나의 옆모습. 그 뒤로 보이는 허황됨의 상징인 거울, 그녀의 무릎에 놓인 세상의 한계 즉 인간의 죽음을 나타내는 해골, 그리고 아마도 그녀의 영적 깨달음을 상징했을 촛불이 허황됨의 상징인 거울에 비추어 두 개로 나타나 그녀의 옆얼굴을 훤히 밝힌다. 촛불과 그림자의 대조, 지극히 기하학적인 구조감, 그리고 명상적인 분위기가 카라바조를 계승한 그의 그림의 성격을 잘 나타낸다.

 

고향이 막달라여서 막달라의 마리아, 마리아 막달레나로 불리는 그녀는 성경에서 자기 몸에 들린 일곱 마귀를 뽑아 준 예수를 존경하여 자신의 재산으로 그 일행을 돕고 따르던 여인들 중 하나로, 예수의 십자가 위 죽음과 무덤에 묻힘, 빈 무덤, 그리고 부활을 옆에서 함께 한 산 증인으로 나타난다. 특히 예수가 부활한 후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처음으로 나타남으로써 부활의 첫 목격자가 된 그녀는 이를 사도들에게 알리기 위해 보내졌다. 이로 인해 그녀는 초기 그리스도 공동체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부활 이후의 그녀의 행적은 성경 상에서 사라졌고, 교회사에서조차 오랫동안 특유의 많은 전설들로만 전해져온 그녀의 이야기는 종종 예수의 발에 눈물을 떨어뜨리고 긴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고 향유를 바른 베타니아의 마리아와 동일시되기도 했다. (그래서 종종 그녀는 자신의 성화에서 향유병을 든 모습으로 그려졌다.) 또 (그녀의 출신지인 갈릴래아 호수 서쪽 연안의 ‘막달라’가 염색업과 직물업이 발달했던 도시로 도덕적으로 부패한 곳이었다는 데서 가정한 것인지) 루카복음에 나타난 ‘용서받은 죄 많은 여자인 창녀였던 다른 마리아와도 동일시되어 매춘부 출신으로 쾌락을 탐닉하다가 예수를 만나 회심한 여자라고 전해졌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도 591년 마리아 막달레나가 창녀였다고 강론하는 등, 이후 198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사도들의 사도’로 다시 격상될 때까지 1400년 가까이 그녀는 매춘부로 잘못 알려져 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를 만나 자신의 죄를 용서받은 여인으로서 ‘회개(통회)와 관상의 이상적인 모델’로 여겨져 왔다. 실제로 유수의 화가들이 이런 모습의 성녀를 그림으로 표현했는데, 그렇게 탄생한 유명한 작품들 중 하나가 바로 드 라 투르의 ‘회개하는 마리아 막달레나’이다. 화가 드 라 투르에게 강한 영감을 준 이탈리아의 바로크 거장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년) - 실제로 드 라 투르는 작품의 앵글과 몇몇 작은 것들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스승 카라바조의 막달레나를 아낌없이 따랐다 - 역시 많은 논란이 된 ‘회개하는 막달레나’(Maddalena Penitente, 1594-1595년)그림2)라는 유명한 작품을 남겼다. 이는 헨델로 하여금 그의 첫 오라토리오를 쓰게 한 대본가이자 추기경이었던 베네뎃 토 팜필리(Benedetto Pamphili, 1653-1730년)의 로마 팜필리가(집안) 저택 갤러리(Doria Pamphilj Gallery)에 소장되어있다.

 

추기경이자 당시 로마 예술계, 특히 음악인들의 든든한 후원자던 베네뎃토 팜필리는 스스로 많은 종교적 소재의 대본을 쓰고 스스로 작곡도 하였다. 알렉산드로 스카를랏티, 카를로 체사리니 같은 당시 유명한 작곡가들이 그의 대본에 곡을 붙여 세상에 내놓곤 했다. 1706년, 드디어 21세의 헨델은 예술적 영감이 넘친다는 이탈리아를 방문하게 되었고, 그의 재능을 알아본 팜필리 추기경은 바로 그에게 후원을 약속한다. 그들의 만남은 이듬해 헨델과 첫 오라토리오를 함께 쓰는 결실을 보는데, 이것이 바로 헨델의 첫 오라토리오 작품인 <시간과 깨달음의 승리>이다. 이 작품은 Bellezza(미, 아름다움), Piacere(쾌락, 즐거움), Tempo(시간), Disinganno(계몽, 깨달음)를 각각 이름으로 의인화해서 이들의 도덕적 윤리적 논쟁을 극적으로 다룬 오라토리오이다. 이 흥미로운 소재와 음악적 구성으로 하여금 종종 연출이 붙여져 오페라처럼 공연되기도 한다.

 

(1부) 거울을 보며 젊고 아름다운 자신을 감탄하지만, 언젠가는 다 늙어지고 변할 것을 걱정하는 아름다움에게 즐거움은 자신에게 충실하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런 그녀에게 나타난 시간과 깨달음은 지금의 아름다움이 꽃과 같아서 한순간 예쁘다가 죽고 마는 것이라 말한다. 이때 우아한 젊은이가 매혹적인 음악(오르간 소나타)으로 모든 감각적인 아름다움을 떠오르게 하자 아름다움은 시간도 자신의 즐거움을 결코 빼앗을 수 없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두 조언자는 끝이 있는 지상의 삶을 인정하기 싫다면 다가올 영원함 속에서는 어떻게 살아남을지 생각해 보라고 조언한다.

 

(2부) 아름다움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시간과 깨달음은 진정한 즐거움이 세상의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고 하며 늦지 않았으니 결정하라고 한다. 정의로운 이들의 눈물은 하늘에서는 진주와 같게 된다는 깨달음의 눈물에 대한 가르침에 즐거움은 ‘가시는 두고 장미만 꺾으라’(울게 하소서의 원곡), ‘너는 지금 네 고통만 찾고 있는 거야’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진실의 거울을 마주할 결심이 선 아름다움은 빛을 달라고 청하며 즐거움에게 작별을 고한다. 마침내 ‘진실의 거울’을 보며 자신의 추잡한 실체를 본 아름다움은 멀리 가서 혼자 살 것을 결심한다. 진심으로 회개를 바라는 아름다움이 하늘의 수호천사들에게 구원을 청하는 기도로 오라토리오는 조용히 끝을 맺는다.

 

주인공 아름다움이 내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바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를 모델로 했다는 음악학자들의 주장과 논리가 끊임없이 있어 왔다. 이는 당시 가톨릭 교의에서 강조했던 ‘회심’이라는 주제와 맞물리는데, 베네뎃토 팜필리 추기경도 이에 관한 대본을 많이 썼다. <탕자 - il figliuol prodigo>, <은총의 승리 또는 막달레나의 대화 - Il trionfo della gratia ovvero la conversatione di Madalena> 등이 대표적이다. <은총의 승리>는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마리아 막달레나가 회개(Penitenza)와 젊음(Gioventu)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회심하는 이야기이다. <시간과 깨달음의 승리>처럼 회개나 젊음을 의인화한 것과 더불어 줄거리에서도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어 주인공 아름다움이 바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를 모델로 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또 내려오는 전승에서 마리아 막달레나가 몇몇 여인들과 함께 먼 곳으로 떠나 아무도 살지 않는 동굴로 사라졌다는 이야기와도 흡사해서 곡을 알면 알수록 이것이 그녀를 주제로 한 오라토리오라고 설득당하게 된다. 헨델이 이 곡을 작곡한 지 20여 년이 지나 작곡가 카를로 체사리니(Carlo Cesarini)도 같은 대본에 <후회하는 아름다움에의 시간의 승리 - Il trionfo del Tempo nella Bellezza ravveduta>라는 오라토리오를 썼다. 그 음악은 유실되었지만, 대본과 북 클렛 표지그림3)가 남아서 헨델의 인물화된 네 역할들의 세팅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남았다.

 

5~6년 전 이 작품을 처음으로 연주할 기회가 있었다. 작품 전에 받아본 공연용 악보에는 음악감독인 지휘자가 생각하는 드라마적인 요소들과 원하는 연출방식, 그리고 작품을 해석하는 데 도움을 받은 많은 자료들의 간략한 메모가 적혀 있었다. 거기서 나는 판 데어 린덴(Huub van der Linden)이 쓴 대본가 베네뎃토 팜필리에 관한 글을 알게 되었고, 그 안에서 그가 교회의 성인들을 극으로 표현해 내는 교의적 방식을 읽게 되었던 것이다. 비록 전승으로 인해 오해된 인물의 해석으로 탄생된 작품이지만, 이 오라토리오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를 모델로 했다는 것은 가톨릭 신자인 나로 하여금 작품의 인물을 더욱 가깝게 느껴지게 했다. 고음악 거장인 지휘자 르네 야콥스의 제안이었던 이러한 인물 해석방식과 그 당시 그녀를 그린 그림들을 비유로 들며 대본에 나타난 거울 등 소품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음악작품을 향한 흥미로운 접근법이었기에 내가 맡은 역할 아름다움에 남다른 애착이 생기기도 했다. 나는 계속해서 ‘마리아 막달레나의 회심’을 주제로 한 다른 많은 회화작품들을 찾아보았다. 다른 공연 차 로마에 갔을 때, 팜필리 저택 갤러리를 방문해 드 라 투르가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다는 카라바조의 <회심의 막달레나>도 보았다.

 

어떤 그림인지 알고 가긴 했지만, 실제로 찾았을 때는 적잖은 실망을 해야 했다. 그 저택 갤러리에는 막달레나의 회심이라는 같은 주제의 다른 작가의 작품들도 몇몇 있었는데, 주인공들의 표정은 침통했지만 모두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 가장 유명하다는 카라바조의 마리아 막달레나는 누가 봐도 어여쁜 주인공이 아니었다. 늘 이런저런 논란에 휩싸이던 카라바조가 완성한 최초의 종교작품이라는 이 그림은 당시에도 비난과 찬양이 교차했다고 한다. 특히 마리아 막달레나를 그리던 전통적 관습들과 너무 차이가 나서 모두에게 쇼크를 주었다. 전에도 고급 매춘부 몇몇을 모델로 삼아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었던 그가 막달레나의 모델로 택한 여인 역시 그들 중 하나였던 ‘안나 비안키니’다. (카라바조는 이 모델로 성모 마리아를 그리기도 하였다.) 이는 곧 ‘옆집 여자처럼 평범한 여인네 하나가 밤중에 혼자 머리 마르길 기다리는 것 같다.’, ‘오일병이나 끊어진 장신구들같이 다른 종류의 그림에나 쓰이는 소재들을 사용함으로써 너무 꾸며댄 듯한 종교작을 만들었다.’ 등의 혹평을 받았다. 또 어떤 이는 ‘이 그림은 애수를 자아내는 어떤 것과 노곤한 감수성을 일절 배제한 것’이라고 사실주의적 평가를 했다. 오히려 한 성직자는 ‘가슴 깊은 곳의 양심의 가책과 그 뒤에 비밀스럽게 타오르는 불빛을 보이게 하는 카라바조는 그만의 특유한 색깔로 가장 내적인 감각들을 표현해 냈다. 과연 카라바조는 눈먼 양심의 어두움 속에(in the blind darkness of conscience) 숨은 호수의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다’라고까지 극찬했다고 전해진다. 한편 한 전기 작가는 비안키니의 기록을 인용해 ‘이 그림은 당시의 매춘부들이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를 표현하고 있다. 부은 눈과 손등, 연고가 담긴 병은 그들이 당시 경찰과 시민들에게서 받은 치욕을 보여주며 그 상처들은 카라바조에게 영감을 주었다.’고도 남겼다.

 

사실 내가 실제로 가서 보며 꼭 보고 싶었던 것은 오른쪽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이었다. 미리 읽고 간 도움 글들에 강조된 그 한 방울의 눈물은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기에 그 궁금증은 더했다. 이 갤러리에서도 그 그림이 꽤 높이 걸려있는 데다 조명들에 반사되어 어렵게 몸을 이리저리 구부리고 목을 빼고서야 그 한 방울의 눈물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그때의 기쁨과 환희, 그리고 동시에 마음을 동요했던 슬픔. 그 눈물은 대본에서 말하던, 하늘에 올라가면 진주가 된다는 옳은 이들의 보잘것없는 눈물, 그리고 주인공 아름다움이 조용히 하늘의 천사들에게 부르는 마지막 아리아와 꼭 닮아 있었다. 한 여인네의 한없이 쪼그라든 절망 속에서 그 한 방울 눈물로 인해 작게 피어나 빛나고 있는 참된 기쁨. 그것이 팜필리 추기경이 말하고 싶었고, 드 라 투르나 카라바조가 그리고 싶었고, 헨델이 울려내고 싶은 음악이 아니었을까를 상상하며 준비하는 공연은 남달리 소중했다. 어떤 예술분야든 명작들은 시대를 초월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에 대본은 읽으면 읽을수록 현세에서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것들을 담고 있었으며, 그림들 역시 수백 년 후의 현대인들도 빠져들 만큼 신비로웠다. 처음 썼던 오라토리오의 대본을 수정하여 생애 마지막 오라토리오 <시간과 진실의 승리>를 완성한 헨델 역시 화려한 오페라로 명성을 얻는 동안에도 평생 이 주제를 소중히 마음에 담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우리의 이 작품 첫 공연은 12월 31일, 한 해 마지막 날 저녁으로 계획되어 있었는데, 신나게 들뜨고 화려한 음악이 아닌 이렇게 회개를 주제로 하는 (물론 극적인 요소로 음악적으로는 생동감이 넘치지만) 오라토리오를 한 해를 마무리하도록 한 용기와 의도에 박수를 보냈다. 한껏 꾸미고 나왔던 아름다움이 시간과 깨달음의 도움으로 마음을 돌리고 마침내 그 마음을 오롯이 하늘로 향해 읊조리는 기도의 노래로 공연이 끝나는 한 해의 엔딩. 내가 그즈음 잠을 잘 못 잔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는지 지휘자 르네 야콥스가 마지막 리허설이 끝난 후 내게 조용히 다가와 물었다. “너도 이런 벅찬 작품을 준비할 때면 잠이 들기가 어렵느냐?”고. 안 피곤해서가 아니라 이게 너무 아름다워서….

 

[평신도, 2018년 가을호(VOL.61), 임선혜 아녜스(성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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