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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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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마태오 (Matthew)
축일 9월 21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사도, 복음사가, 순교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세기경
같은이름 마두, 마태우스, 마테오, 마테우스, 매튜
성지와 사적지 게시판
제목 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마태오 복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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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3-07 조회수617 추천수0

[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마태오 복음서

 

 

마태오 복음서는?

 

마르코 복음서, 루카 복음서, 요한 복음서와 더불어 마태오 복음서 역시 예수님 말씀과 행적을 전합니다.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에서 모든 복음서는 같습니다. 그래서 꼭 같거나 비슷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네 복음서 안에는 조금씩 다른 이야기도 들어있고 어떤 때는 아주 다른 이야기도 나옵니다. 복음서를 쓴 이들이 전해오는 이야기를 뽑고 또 다듬어서 나름대로 차례를 정해놓았기 때문입니다. 마태오는 마르코 복음서를 눈앞에 놓고 이를 바탕으로 복음서를 씁니다. 마르코 복음서에다가 예수님 말씀만을 모아 놓은 ‘어록집(Logionquelle)’에서 많은 내용을 가져옵니다. 거기에 교회 전승에서 물려받은 내용을 신학적으로 정리한 것이 바로 마태오 복음서입니다.

 

 

마태오 복음서를 예로부터 교회의 복음서라고 부르는 이유는?

 

마태오 복음서는 전통적으로 ‘교회 공동체의 복음서’로 읽혀왔습니다. 네 복음서를 통틀어 마태오 복음서에서만 ‘교회(ecclesia)’ 란 표현이 나오기 때문입니다(16,18; 18,17-18). 거기에다 이 복음서에 들어있는 풍부한 자료들과 내용의 질서정연한 배열 등 때문에 교회의 복음서로 불리게 되었을 법도 합니다. 마태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교회의 주님으로서 언제나 공동체 한 가운데 우뚝 서 계시는 분으로 등장하십니다.

 


늘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

 

예수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표현은 다음과 같이 복음서 맨 처음에, 중간에, 그리고 끝에 가서 두드러지게 드러납니다.

 

복음서 맨 앞에(1,23)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복음서 중간에(18,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복음서 끝에(28,20)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오 복음서의 첫 번째 특징은?

 

예수님께서 구약을 자주 인용하신다는 점입니다. 이는 마태오가 자신의 독자들인 유다출신 그리스도인들을 눈앞에 두고 그들을 대상으로 복음서를 썼기 때문입니다.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선언하는 구약 인용구들은 메시아의 모습을 보다 선명히 드러내주는 역할을 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봅니다.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2,14-15)

 

“그리하여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2,17-18)

 

“요셉은 나자렛이라고 하는 고을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이로써 예언자를 통하여 ‘그는 나자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2,23)

 

 

마태오 복음서의 두 번째 특징은?

 

복음 선포의 사명은 네 복음서가 다 강조하는 바이지만, 특히 마태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교회 공동체의 선교사명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열한 제자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28,19)

 

 

성호경의 유래는?

 

가톨릭신자들이 늘 기도를 시작할 때와 끝맺을 때 외우는 성호경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다음 명령에서 나온 것입니다. “아버지[성부]와 아들[성자]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28,19) 성호경은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뒤에다가 영원하신 분을 믿고 그분의 뜻에 따르겠다는 의미의 “아멘”을 붙인 기도입니다. 이 기도문을 외울 때 천주교 신자들은 오른손을 쳐들어 이마에서부터 가슴으로, 왼쪽 어깨위로부터 오른쪽 어깨위로 십자가를 그으면서 끝에 가서 아멘을 외웁니다. 이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성스러운 기도입니다. 이곳에 나오는 삼위일체 하느님 이름, 곧 성호경으로 모든 신자들은 기도를 시작하고 맺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 덕분에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이와 같이 성호를 그으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아주 쉽게 마태오복음 28,19을 줄줄 외우게 됩니다.

 

 

마태오 복음서의 세 번째 특징은?

 

예수님께서 우리 교회 공동체의 주님으로 그 한가운데에 계시면서 우리의 결단과 행동을 촉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공동체 한 가운데 머무시는 주님께서는 우리도 우리 이웃 안에서 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끊임없이 그분을 만나도록 초대하십니다.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25,37-40)

 

 

마태오 복음서의 네 번째 특징은?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도 교회를 떠나시지 않고 ‘세상 한 가운데 공동체의 주님으로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는 탄생 이전에 요셉에게 나타나 ‘임마누엘(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이 그분의 이름이 되리라.’고 전한 천사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울러 부활하신 예수님은 교회를 떠나지 않으시고 오히려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있겠다.’고 하십니다. 그분이 우리 교회와 온 세상의 주인이심을 강조하면서 복음은 우리 모두를 초대합니다.

 

 

마태오 복음서의 다섯 번째 특징은?

 

마태오는 예수님 말씀 가운데 비슷한 이야기나 가르침을 뽑아서 한데 모아 놓기를 좋아합니다. 마르코와 루카에 비해 마태오는 보다 깊은 뜻을 가지고 말씀을 편집해놓습니다. 이렇게 모아 놓은 예수님 말씀이 큰 덩어리로 다섯 번 나옵니다. 첫 번째로 하늘나라의 의로움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는 흔히 산상설교로 부릅니다(5,3-7,27). 두 번째로 하늘나라 선포자의 선택과 파견이 나옵니다(10,5-11,1).

 

세 번째로 하늘나라의 신비에 대한 비유가 나옵니다(13,1-53). 네 번째로 하늘나라의 자녀 곧 교회 공동체가 지녀야 할 모습이 나옵니다(18,1-35). 다섯 번째로 하늘나라를 맞을 준비 곧 심판에 결부된 장면이 나옵니다(24-25장).

 

 

말씀을 모아 놓은 곳뿐 아니라

 

기적을 모아 놓은 곳도 있습니다. 첫 기적 모음은 나병 환자 치유로부터 시작하여 백부장의 종과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신 다음 온갖 종류의 환자를 다 치유해주시는 이야기로 막을 내립니다(8,1-17). 두 번째 기적 모음은 풍랑을 가라앉히시는 기적으로부터 마귀들이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고 그 돼지들이 물속에 빠져 죽는 이야기를 거쳐 중풍 병자 치유 이야기로 끝납니다(8,23-9,8). 세 번째 기적 모음은 야이로의 딸과 하혈하는 부인 치유로부터 눈먼 두 사람 치유와 말 못하는 이를 고쳐주시는 이야기에서 끝납니다(9,18-34).

 

 

마태오가 선포하는 ‘하늘나라(하느님 나라)’는?

 

미래뿐 아니라 현재까지도 포함합니다. 교회는 말씀과 표징을 통하여 하늘나라를 선포합니다. 또한 교회는 예수님과 함께 이미 시작된 그분의 나라가 완성되기를 지속적으로 기다리며 기도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마태 6,10)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1월호, 신교선 가브리엘 신부(인천교구 용현5동성당 주임)]

 

 

[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마태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활동과 가르치심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하셨기에 군중이 그분을 뒤따릅니까?

 

예수님께서 온갖 병마에 시달리던 이들을 깔끔하게 치유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셨다.”(4,23)

 

예수님의 등장과 더불어 사람들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맛보지 못했던 새 시대가 열렸음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갈릴래아 호수 주변으로부터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보고 들음으로써 이제 사방에서 군중이 예수님께로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가르치다, 선포하다, 고쳐주다’ 동사는?

 

4장 23절에 나오는 세 동사는 서로 구별되면서도 동시에 떼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밀접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다음 구절에서도 이와 거의 같은 문장 안에 세 가지 동사가 함께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셨다.”(9,35) 이와 같이 예수님의 여러 가지 활동을 종합적으로 정리해주는 구절을 흔히 요약문이라 부릅니다.

 

 

예수님의 복음선포와 병자치유의 결과로?

 

더 많은 환자들이 모여듭니다. “그분의 소문이 온 시리아에 퍼졌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과 마귀 들린 이들, 간질 병자들과 중풍 병자들을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주셨다.”(4,24)

 

이제 동서남북에서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옵니다. “그러자 갈릴래아, 데카폴리스, 예루살렘, 유다, 그리고 요르단 건너편에서 온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4,25) 마태오 복음사가는 병자 치유에 대하여 각별한 관심을 기울입니다. 근래 들어 뇌전증이라고 부르는, ‘간질병’이라는 단어는 신약성서 전체에 걸쳐서 마태오 복음서 안에만 나옵니다.

 

 

사방에서 모여든 군중은?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이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갈릴래아-데카폴리스-예루살렘-유다-요르단 건너편’ 등 다섯 지역 한 가운데 예루살렘이 우뚝 서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이상적인 임금으로 여기는 다윗 임금이 이스라엘 전역을 통일하여 거룩한 도성으로 삼은 곳입니다.

 

 

예루살렘을 위시하여 모여든 다섯 지역 사람들은?

 

이스라엘 선조들을 포함하여 모든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이들로서 예수님의 등장과 더불어 만방에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병자를 고쳐주고 마귀들을 쫓아낼 새 시대[신약시대]의 주역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분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10,5-7)

 

 

병자 치유는?

 

복음서에서 더러운 영이나 질병은 사탄의 나라에 속한 것이며 죄의 표징으로 이해됩니다. 따라서 병자 치유는 곧 사탄에 대한 승리의 표징으로서 하느님 나라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선언하십니다. “내가 하느님의 영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아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12,28; 참조: 루카 11,20)

 

병자 치유를 통하여 이미 구약의 말씀이 성취되고 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너희[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온갖 병을 없애주실 것이다.”(신명 7,15)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님과 더불어 움터온 새 시대가 활짝 열렸음을 몸소 체험하게 됩니다. 구약에 희망이 현실화 되고 있음을 봅니다.

 

 

구약의 말씀과 예수님?

 

복음사가 마태오는 자주 구약을 인용함으로써 예수님이 참으로 유다인들이 고대하던 메시아[그리스도]이심을 입증해줍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1,22-23: 이사 7,14의 말씀이 성취됨)

 

 

산상설교는?

 

마태오 복음서 안에 나오는 예수님의 긴 설교 다섯 가지 가운데 가장 길고 화려합니다. 그 안에는 예수님의 여러 가지 말씀이 모여 있습니다. 이 긴 설교 한 가운데 주님의 기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산상설교에서 예수님의 참 가르침이 무엇인지가 밝게 드러납니다.

 

그분을 체험한 이들은 지금 예수님께서 산위에서[조금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시는 군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5,1)

 

여기서 말하는 군중은 다름 아닌 예수님이 누구신지 이미 맛보고 어느 정도는 깨달은 이들입니다. 말씀을 들을 채비를 갖추고 모여온 이들을 눈앞에 두고 예수님은 산으로 오르시어 말씀하십니다. 산은 구약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받는 곳입니다.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습니다(탈출 19,3).

 

 

참행복(행복 선언)?

 

이는 구약에서부터 이미 특은을 받은 이들을 축하할 때 쓰던 표현입니다. “행복하여라! 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들지 않으며…… ”(시편 1,1)

 

예수님의 궁극적 가르침은 인간적 기준을 뛰어넘는 참사랑(5,44-48)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사랑의 계명을 다 지키도록 가르치라고 제자들에게 명령하십니다(28,20).

 


구약의 완성?

 

예수님은 구약의 율법을 완성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5,17) 그렇다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는 제자들(12,1-8) 이야기나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치시는 이야기(12,9-14) 등에서 보듯이, 유다인들이 볼 때 안식일 규정을 어기시는 예수님 모습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여기서 예수님은 유다인들의 그릇된 율법 해석을 올바로 고쳐주십니다. 본래의 율법 정신을 깨우쳐주십니다. 전적으로 새로운 해석이라기보다 오히려 오랜 동안 잘못 해석되어 오던 관행을 되돌려 율법의 근본정신에 맞게 가르쳐주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12,8) “안식일에 좋은 일은 해도 된다.”(12,12)

 

 

산상설교의 가르치심은?

 

모든 율법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사랑의 계명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율법의 잣대가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5,44) 마태오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늘의 하느님처럼 완전하게 되도록 노력하라’고 명하십니다(5,48). 이 말씀은 다음 말씀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께 흠이 없어야 한다.”(신명 18,13) 나아가 성결법의 말씀과도 직결됩니다.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9,2) 예수님은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주십니다.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7,12)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2월호, 신교선 가브리엘 신부(인천교구 용현5동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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