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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베르 라우렌시오(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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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앵베르 라우렌시오 (Imbert Lawrence)
축일 9월 20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순교자
활동지역 한국(Korea)
활동연도 1796-1839년
같은이름 라우렌시우스, 라우렌티오, 라우렌티우스, 로렌스, 로렌조, 범세형
성지와 사적지 게시판
제목 굿뉴스 연재 기해박해 순교자 약전: 성 앵베르 주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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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굿뉴스 쪽지 캡슐 작성일2019-09-09 조회수574 추천수3

굿뉴스 연재 기해박해 순교자 약전, 성 앵베르 주교 편

 

 

프랑스 남부의 가난한 소년 앵베르

 

기해박해의 가장 주요한 순교자를 꼽으라면 당연히 제2대 조선대목구장인 앵베르 주교(1796-1839)를 빼놓을 수 없다. 앵베르(세례명 라우렌시오, 한국명 범세형) 주교는 1796년 프랑스 남부 액스 교구에 마리냔 본당 관할 브리카르에서 태어났다. 매우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앵베르는 어린 시절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하여 학교를 다닐 수 없었다고 한다. 이런 그에게 도움을 손길을 내민 두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이웃집 아주머니 마르그리트와 카브리에 본당의 아르노 신부였다. 총명하고 배움에 대한 의지가 강한 어린 소년 앵베르를 알아본 마르그리트 아주머니는 앵베르에게 친히 알파벳을 가르쳐 주었다. 알파벳을 익힌 직후 소년 앵베르는 카브리에 본당 아르노 신부의 곁으로 보내져 함께 생활하게 되었는데, 바로 이 아르노 신부의 도움으로 마침내 학교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후 틈틈이 수도회의 묵주를 만들어 팔면서 가난한 고학생의 삶을 견뎌낸 청년 앵베르는 1812년 액스 교구의 대신학교에 진학하여 무사히 사제가 되는 길을 밟게 되었다.

 

 

사천 대목구로의 파견

 

흔히 제2대 조선대목구장으로서의 앵베르 주교만을 기억하기 쉽지만, 사실 1818년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 후 1819년 12월 18일 사제 서품을 받은 앵베르 신부에게 주어진 첫 부임지는 중국이었다. 1836년 4월 브뤼기에르 주교의 보좌주교로 임명되기까지 10여 년간을 중국 사천 대목구의 선교사로서 활동하였던 것이다. 오히려 주교가 된 앵베르가 1838년에서야 1년 남짓한 기간 조선에서 본격적인 직무를 수행하였던 것을 생각하면, 그의 짧았던 조선 대목구장으로서의 활동에 비해 중국에서의 선교활동은 오히려 훨씬 오랜 기간이었던 셈이다. 구체적으로 알려진 업적이 많지는 않지만 이 기간 동안 앵베르 신부는 티벳 국경의 모팽이라는 지역에 신학교를 세우는 등 많은 활동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대목구장으로서 짧은 기간 안에 그가 해냈던 많은 일을 생각한다면, 중국에서 앵베르 선교사의 활동 역시 앞으로 구체적으로 조명되어야 할 부분이 많을 것이다.

 

 

제2대 조선 대목구장이 되다

 

1836년 4월, 앵베르 신부는 브뤼기에르 주교의 보좌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앵베르 주교가 실제 이 소식을 접한 것은 1년이 지난 1837년 4월 무렵이었고, 그나마도 브뤼기에르 주교의 사망 소식이 함께 이어졌다. 이에 따라 앵베르 주교는 같은 해 5월 14일 사천 대목구장 퐁타나 주교에 의해 제2대 조선 대목구장으로 성성되었다. 한편 사천에서 조선까지 앵베르 주교의 여정 역시 녹록치가 않았다. 성성식을 마친 앵베르 주교가 8월 16일에야 사천을 떠나 10월경 서만자에 도착하였고, 다시 북경, 산해관을 경유해 12월이 되어서야 국경지대에 도착할 수 있었으며, 마침내 정하상 바오로, 조신철 가롤로 등을 만나 국경을 넘어 서울에 도착한 것은 1837년 12월 31일이었다. 무려 석 달이 넘게 걸린 긴 여정이었던 셈이다. 이로써 앵베르는 조선 땅을 밟은 최초의 주교가 되었으며, 조선 교회는 창설 53년 만에 비로소 모든 조직을 갖추게 되었다.

 

 

조선 교회의 기틀을 다지다

 

앵베르 주교는 1년 남짓한 조선에서의 짧은 사목활동을 통해 한국 천주교회의 기틀을 다지고 교세를 성장시키는 큰 업적을 남겼다. 특히 앵베르는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고 한국에 효과적으로 가톨릭 신앙을 전하는 문제에 골몰하였다. 부단히 한국어를 익힌 앵베르 주교는 불과 3개월 만에 한국어로 고해성사를 줄 수 있게 되었다. 어려운 한자로 돼 있어 그 뜻을 알기 어려웠던 기도서를 교양이 부족한 일반 신자들도 쉽게 익힐 수 있도록 한국어 기도서의 편찬을 계획하여 1838년 경에는 《텬주 셩교 공과》, 《텬주 성교 십이단》을 완성할 수 있었다. 1836년 6,000여명이었던 신자 수는 1838년 말이 되면 9,000여 명으로 기하급수적인 증가를 기록하였다. 이러한 교회의 성장은 앵베르 주교의 열정적인 사목의 결과였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정하상 바오로, 이재의 토마스 등에게 라틴어와 신학을 가르침으로써 한국인 사제의 양성의 명확한 목표를 실천에 옮기고 있었던 점이다.

 

 

박해와 순교

 

1839년 초, 박해의 국면이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자 앵베르 주교는 신자들에게 서둘러 성사를 집행하고자 상경하였다. 조정에서 그 해 4월 ‘사학토치령(邪學討治令)’이 반포되고 이어 5월이 되어 남명혁 다미아노 등 9명이 공식 처형되는 상황에서 앵베르 주교는 수원 근처의 상귀라는 곳으로 몸을 피하였다. 그러나 배교자 김순성(일명 김여상)의 밀고로 앵베르 주교의 거처가 알려지자, 주교는 다른 신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1839년 8월 11일 자수하여 서울로 압송되었다. 수차례의 혹독한 고문과 형벌을 이겨낸 앵베르 주교는 군문효수형을 선고받아 1839년 9월 21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다시금 성 앵베르를 추모하며

 

앵베르 주교의 유해는 노고산, 삼성산,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를 거쳐 1901년 11월부터 명동성당 지하에 모셔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앵베르 주교의 뒤를 이은 제3대 조선 대목구장 페레올 주교는 앵베르 주교의 순교를 기록하며 그의 인품을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그는 모든 일을 규칙적으로 하여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반드시 했다. 사소한 일이라도 그러했다...자기 자신에게 극히 엄격했던 그는 타인들에게는 극히 온화했다. 어린이들이 부모를 쉽게 가까이하는 것처럼 신자들도 그를 쉽게 가까이 할 수 있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굳은 의지로 오랜 사제 양성의 과정을 거쳐 선교사로 파견되었던 성 앵베르.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천주교회에서 그의 업적은 컸다. 작은 일일지라도 모든 일을 규칙적으로, 또 반드시 해내고야 말았던 분. 그러면서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신자들에게 한없이 온화했던 분. 갑자기 찾아온 박해와 순교를 맞은 앵베르의 삶이 더욱 빛나게 다가오는 것은 그의 이러한 인품 때문이기도 하다. 기해박해 180주년을 보내며 다시금 성 앵베르를 추모한다. 그리고 다짐해 본다. 언제 찾아올지 모를 이승에서의 마지막 날, 부디 주님 앞에서 떳떳한 삶을 살았다고 고백할 수 있기를.

 

[자료 제공 : 한국교회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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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민석 (leemindol) 쪽지

    이 약전을 통해 한국 천주교회의 성장의 첫걸음이 앵베르 주교님의 사목활동의 결과로 이루어졌음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천주교회가 앵베르 주교님의 사목활동을 되새기며 더욱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한 앵베르 주교님이 기해박해 당시 한국 천주교회 신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자수하고 순교하셨다는 사실을 통해 주교님이 얼마나 우리 한국 천주교회를 사랑하셨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9/09/09  
  • 이상선 (ss460815) 쪽지

    엥베르 주교님을 생각하면 성가 284장이 떠오릅니다.. 얼마나 안타까웠을까요! 엥베르주교님의 친구인 구노의 그 선율이 범주교님의 빛나는 생의 모습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무궁무진세에 천주께 영광이요......엥베르범주교는....성인이며 용맹한 성인이여 우리에게 용덕을 주소서...가사도 너무 애절하고 그 암울했던 시대에 빛이 되셨던 분들의 삶을 허수히 과거의 한 순간으로 잊고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성인이여우리에게 용걱을 주소서. 찬류세상 영 이별한 후에는 영복소에 만나게 하소서 영복소에 만나게 하소서.....굿뉴스덕분에 "제가 순교자 성월을 아주 잘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19/09/10  
  • 김태윤 (bona7924) 쪽지

    관면혼배기념일을 기리며 남편의 영세기원 기도 윤지충바오로와 124위 복자 시복시성기도를 드리고 있는중 레지오마리에선서와 체나콜로 다락방기도의 회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남다른 9월을 보내고 있는 요즘 성앵베르주교님의 축일이 9월20일이라는것과 주교님의 생애에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성당에서의 감투와 책임이 주어지면서 맡겨진 임무에 대해서 버거워하며 능력주십사 묵주기도를 청하고 있는제게 다시금 순교의 열정을 보여주시는군요. 이 시대에도 순교가 있음을. 그런 순교자의 자세로 살아가야 악의세력을 이기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됨을 깨닫게 됩니다.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극히 온화한 주교님의 생에를 다시금 묵상하며 크신분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제 자신의 영성생활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마침내 크신분 앞에 섰을때 발치에서나마 그 분의 빛이 제 얼굴에 빛나게 하소서 아멘!

    2019/09/10  
  • 김희정 (maria091219) 쪽지

    감사합니다. 엥베르 주교님에 대해, 그리고 당시 우리나라의 신앙적 환경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2019/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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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9/11  
  • 정명진 (jmj9488) 쪽지

    한국의 성지순례를 체험하면서 세번 정도 앵베르 주교님의 유해를 참배한 적이 있다. 오늘 연재 글을 읽으면서 새삼 실연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늘상 작고 큰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이 실연이 나에게 오직 않기를 바랜다. 하느님이 말씀하시기를 자신의 십자가를 메고 따라 오라고 하신다. 아무리 작은 일일지라도 하느님에 내게 맡긴 임무임을 깨닭고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고통은 하느님과 같이 지고 가고, 기쁨은 하느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다. 언제나 작은 일 하나라도 기꺼이 감수하고, 주어진 소명을 다 할때 하느님이 이 땅에 나를 보낸 이유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불편하고 힘든 일상이 나를 힘들게 할지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 오늘 밤 주님이 찾아와도 함께 동행할 수 있도록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겠다.

    2019/09/11  
  • 김석만 (proksm) 쪽지

    기해박해를 생각하면 참으로 많은 분들이 떠오릅니다. 그 중에서 엥베르 주교께서는 오늘날 우리가 신앙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잇도록 한국천주교회의 초석을 다지신 분입니다. 우리 교우들에게 우리말로 성사를 주시기 위해서 우리말을 불과 3개월 안에 익히신 것부터 순교자들의 기록을 남기게 하신 일, 셀 수 없는 여러 가지 일로 우리에게 커다란 영광으 은총을 얻어 주신 분입니다. 엥베를 주교님의 삶과 순교를 기리면서 오늘 나의 신앙을 되둘아보며 더욱 주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게을히 하지 않겠습니다.

    2019/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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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9/13  
  • 박시현 (chorongi1109) 쪽지

    5년 전 부산교구 교회사 관련 특강 수업을 1년간 들었을 때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중요한 것은 배우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할 수 있어야할 것이다. 언제 어디서 만날지 모를 나의 마지막 날, 주님 앞에서 주님의 종으로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이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다짐해 본다..

    2019/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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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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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9/14  
  • 손문희 (6767) 쪽지

    내가 자주가는 새남터성지에서 순교하신 범세형 라우렌시오 주교님, 순교로 인해 짧은 사목활동을 하신 동안에 보여주신 열정이 조선교구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모든 일을 규칙적으로 하여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반드시 하셨던 주교님을 본받아 저의 기도생활에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2019/09/15  
  • 윤성희 (selena02) 쪽지

    앵베르 주교님, 초대 조선교구장님 이신 브르기에르 주교님은 조선을 눈앞에 두시고 병으로 돌아가시고 부주교이신 앵베르 주교님은 우리 나라에 오셔서 주교로 사목을 하시다가 순교를 하셨습니다. 당시에 프랑스 외방 선교자들은 조선으로 가는 선교들에게 살아 있는 순교자라고 하셨습니다. 조선에 가면 죽는 줄을 알면서도 우리릉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선교하려 오셨습니다 지난 2014년 8월 15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셔서 대전에서 성모승천 미사를 집전 하셨습니다. 그때 조수미씨가 구노의 아메마리아를 불렸습니다. 같은 외방 선교회 학교에 다녔던 구노가 성 앵베르 범 라우렌시오 주교의 순교를 전해 듣고 작곡한 '아베마리아'입니다. 저는 그후로 매일 성 앵베르 주교님과 더불어 103위 순교자 호칭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기도를 바치면서 그분의 순교 정신을 묵상하지만, 저의 삶은 저 밑바닥을 아직도 걷고 있습니다. 앵베르 주교님, 저희를 위햐여 빌어 주소서

    2019/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