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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데 마티아스(8.20)

마리아 데 마티아스(8.20)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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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마리아 데 마티아스 (Maria de Mattias)
축일 8월 20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설립자, 수녀원장
활동지역
활동연도 1805-1866년
같은이름 마띠아스, 메리, 미르얌, 미리암
성인 기본정보

   성녀 마리아 데 마티아스(Maria de Mattias)는 1805년 2월 4일 지리적으로 이탈리아의 프로시노네(Frosinone) 지방에 있는 교황령 최남단 마을인 발레코르사(Vallecorsa)에서 태어나 그날로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신심 깊은 가정에서 아버지 조반니 데 마티아스(Giovanni de Mattias)와 어머니 오타비아 데 안젤리스(Ottavia de Angelis)의 네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녀는 매우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읽어주는 성경 이야기를 듣고 인류 구원을 위해 희생양이 되신 예수님을 향한 위대한 사랑을 키워갔다. 비록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여성이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그녀는 스스로 읽고 쓰는 법을 배웠다. 신앙의 진리뿐만 아니라 성경의 일화와 인물들에 대해 배우고 내면화시킨 이 모든 일은 발레코르사와 그 주변 지역이 무질서와 혼란에 빠져 고통받던 시기(1810~1825년)에 이루어졌다. 당시 정치적 혼란과 전쟁,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사회는 혼란스럽고 도적이 들끓어 아이들의 납치와 몸값 요구 같은 일도 종종 일어났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성녀 마리아 데 마티아스의 정신 안에서는 증오와 복수로 흘리는 인간의 피와 사랑과 구원을 가져다준 그리스도의 피가 비교되곤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성녀 마리아 데 마티아스는 10대 초반까지 세상과 활발히 접촉하지 못하고 주로 집안에서 지내야 했다. 그러면서 종교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과 외모 등에 더 큰 관심을 두기도 했다. 16~17세 때에 그녀는 인생의 의미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고 무한한 사랑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내면의 어두움을 걷어내던 그녀는 신비로운 환시를 경험하고 하느님의 아름다운 사랑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 사랑은 모든 이를 위해 당신의 피를 내어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고 명백해졌다. 또한 이 체험은 마리아가 앞으로 만나게 될 모든 사람에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천상 아버지의 감미로운 사랑을 깨닫도록 하는 원천이요 힘이자 동기가 되었다. 예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당신의 피를 어떻게 주셨는지를 알고, 하느님의 눈으로 자신의 가치를 이해하기 시작할 때 사람들의 마음과 사회는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이러한 체험이 남녀노소 모든 사람을 신앙으로 인도할 기회가 열렸다. 그녀가 17살이 된 1822년 성혈 흠숭 선교회(Missionariorum Pretiosissimi Sanguinis)를 설립한 성 가스파르 델 부팔로(Gaspar del Bufalo, 12월 28일) 신부가 그녀의 마을을 방문했다. 자기희생의 모범으로써 그리스도의 보혈(寶血, 보배로운 피)의 신비를 제시한 성 가스파르 델 부팔로의 설교에 마을 사람들이 변화되는 것을 보고 감동한 성녀 마리아 데 마티아스는 자신의 가슴속에 간직했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하느님께 헌신할 것을 결심하였다. 결국 성 가스파르 델 부팔로 신부의 동료이자 후계자인 가경자 조반니 메를리니(Giovanni Merlini) 신부의 지도를 받아 1834년 3월 4일, 성녀 마리아 데 마티아스의 나이 29살에 프로시노네의 아쿠토(Acuto)라는 작은 마을에 소녀들을 위한 학교를 열면서 그리스도의 성혈 흠숭 수녀회를 설립했다.

   성녀 마리아 데 마티아스는 활동 사도직, 특별히 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수녀회를 설립하였다. 그녀는 설립자이자 원장으로서 30년을 넘게 이탈리아 전역을 여행하며 여러 곳에 소녀들을 위한 학교와 수녀원 공동체를 설립하였다. 당시 여자아이들이 교육의 혜택을 받는 것은 극히 어렵고 드문 일이었다. 또한 가정생활의 성화를 위해 기혼 여성을 위한 강좌를 여는 등 여성 교육에 헌신하였다. 그녀는 당나귀에 짐을 싣고 먼 길을 걸어서 여행하는 힘겨운 여정이었지만 자신이 가는 곳이면 어느 마을에서든지 예수님께서 당신의 피를 흘림으로써 구속의 사랑을 이루신 성혈의 신비를 선포하길 원했다. 그래서 이탈리아 중부 지역에서 그녀는 ‘설교하는 여성’으로 알려졌다. 그녀가 설립한 공동체는 매우 가난했고 종종 먹을 것이 떨어질 때도 있었지만 항상 자신들이 사는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과 무엇이든 나누기를 원했다. 그녀가 살아 있는 동안 그녀가 설립한 수도 공동체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 이미 70개를 넘어섰다.

   그녀는 1866년 8월 20일 로마(Roma)에서 선종하여 교황 복자 비오 9세(Pius IX)가 기증한 로마의 캄포 베라노(Campo Verano) 묘지에 묻혔다. 그녀의 성덕에 대한 명성은 선종 이후에 더욱 널리 퍼져 30년이 지난 1896년 그녀에 대한 시복시성 절차가 시작되었고, 그 열기는 1950년 10월 1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그녀의 시복이 선포되었을 때 최고조에 올랐다. 그 후 그녀의 유해는 로마에 있는 수녀원 총원의 성혈 경당 내로 옮겨 모셨다. 그녀는 2003년 5월 18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녀의 축일은 다른 축일과의 중복을 피해 생일인 2월 4일에 기념하기도 했으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교회 전통대로 선종한 날인 8월 20일 목록에서 그리스도의 성혈 흠숭 수녀회를 설립한 성녀 마리아 데 마티아스에 대해 기록하였다.♣

참고자료

  • 한국교회사연구소 엮음, 송영웅 옮김, 오늘 성인(성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시성한 성인들) - ‘성녀 마리아 데 마티아스’,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14년, 76-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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