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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카(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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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프랑카 (Franca)
축일 4월 25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수녀원장
활동지역 피아첸차(Piacenza)
활동연도 1175?-1218년
같은이름 비딸따, 비살타, 비잘타, 비탈타, 프란까, 프란카
성인 기본정보

   성녀 프랑카는 1175년경 이탈리아 북부 피아첸차 남쪽에 있는 비탈타(Vitalta)에서 백작 부부의 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신심 깊은 어머니에게 신앙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성녀 프랑카는 7살의 나이에 피아첸차에 있는 성 베네딕토회의 산 시로(San Siro) 수녀원에 맡겨져 교육을 받았다. 영적으로 더욱 성장하기를 바랐던 부모의 희망대로 그녀는 어린 나이지만 다른 모든 자매에게 올바르게 순종하는 법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신심과 극기에서도 뛰어났다. 14살에 이미 수도 서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그래서 주교로부터 서원을 위한 최소 나이에 대한 관면을 받고 첫 서원을 발하였다. 그리고 더욱 엄격히 규칙을 지키며 기도 생활에 충실하고 절제와 금식을 통해 가난한 이들과 병자를 돕는 일에 헌신했다. 1199년경 수녀원장이 사망했을 때 모든 수녀가 젊은 그녀를 후계자로 선출하였다. 성녀 프랑카는 지혜롭게 수녀원장의 소임을 수행하였다. 하지만 엄격한 규칙 준수를 반대하고 이완된 수도 생활을 원했던 수녀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반대파의 대표는 피아첸차 주교와는 남매 사이로 인근 귀족 가문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하느님 외에는 그 어떤 지위와 권력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성녀 프랑카는 나중에 주교가 된 스코틀랜드 출신 성 풀코(Fulcus, 10월 26일)의 중재로 모든 반대를 극복하였다.

   하지만 더 엄격한 금욕생활과 기도와 묵상에 전념하는 수도원을 원했던 성녀 프랑카의 내적 시련은 그치지 않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수도원으로 옮기는 것이지만 이미 서약한 바가 있어서 쉽지 않았다. 다행히 미래의 교황 복자 그레고리오 10세(Gregorius X, 1월 10일)인 테오발도 비스콘티(Teobaldo Visconti)와 사촌 간인 카렌티아 비스콘티(Carentia Visconti)라는 젊은 귀족과의 만남을 통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다. 성녀 프랑카는 그녀에게 엄격한 규칙을 지키는 수도 생활을 권했고, 라팔로(Rapallo)의 시토회 수도원으로 가서 생활하도록 했다. 그렇게 1년을 지낸 카렌티아는 그녀의 결혼을 위해 가족이 마련한 지참금과 다른 귀족 가문의 도움을 받아 모르파소(Morfasso) 근처에 산타 마리아 디 몬텔라나(Santa Maria di Montelana) 수녀원을 건립하였다. 1214년에 카렌티아와 10명의 젊은 수녀들은 성 풀코 주교의 축복을 받으며 새 수녀원으로 이사했고, 성녀 프랑카는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초대 수녀원장의 소임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수녀의 도움을 받아 성 시로 수녀원의 원장직도 한동안 병행하였다.

   성녀 프랑카는 산타 마리아 디 몬텔라나 수녀원에서 비로소 그토록 원했던 수도 생활을 실천할 수 있었다. 그녀는 시토회의 엄격한 규칙에 따라 가난과 금욕을 지켰고, 밤마다 성당에 가서 기도하며 지내는 시간이 자는 시간보다 더 많았다고 한다. 또한 다소 퇴색되었던 성 베네딕토(Benedictus)의 “Ora et Labora”(기도하고 일하라) 정신을 복원하였다. 몬텔라나에서 2년을 지내면서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였다. 수녀원이 외딴곳에 있다 보니 어린 수녀들의 고립감뿐만 아니라 실제로 강도들의 공격과 약탈의 위험으로 인해 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1216년 발레라(Vallera)의 수도원으로 갔다가 다시 피아첸차 근처 피톨로(Pittolo)로 가서 귀족들의 도움을 받아 산타 마리아 델 테르조 파소(Santa Maria del Terzo Passo) 수도원을 지어 정착하였다. 이 모든 일을 마친 성녀 프랑카는 1218년 부활 축제를 지낸 후 쇠약해진 몸에 고열로 인해 4월 25일 선종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뜻대로 피톨로 수녀원에 묻혔다. 그녀에 대한 공경과 기적이 일어나자 1273년 리옹(Lyon) 공의회 참석을 위해 가던 교황 복자 그레고리오 10세가 피아첸차에 머무는 동안 그녀에 대한 공경을 승인하였다. 성녀 프랑카의 유해는 그 후 몇 차례의 이장을 거쳐 피아첸차에 있는 성 베네딕토회의 산 라이몬도(San Raimondo) 수녀원 성당에 안치되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4월 25일 목록에 성녀 프랑카의 이름을 추가하였다. 성녀 프랑카는 프랑카 다 비탈타(Franca da Vitalta), 프랑카 비살타(Franca Visalta)로도 불린다.♣

사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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