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브뤼셀(Brussel)에서 출생한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또는 보니파시오)는 17세 때에 프랑스 파리(Paris)로 유학을 떠났다가 파리 대학교의 유명한 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학생들과 성 보니파티우스 사이에 야기된 분쟁 때문에 고통을 당했는데, 결국은 학생들이 그의 강의를 듣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이때 그는 파리를 떠나 쾰른(Koln)으로 갔고, 그곳에서 단지 2년을 지내다가 스위스 로잔의 주교로 선출되었다. 그는 정성을 다하여 교구 발전을 위하여 헌신하였지만 거의 8년 동안이나 자신이 큰 불신을 받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파리 대학교의 사건이 와전된 것이 주요 이유였다. 그는 마침내 프레데릭 황제군에 의하여 심한 부상까지 입었다. 그래서 그는 교구장직을 떠나야겠다고 판단하여 교황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교황은 그를 브뤼셀의 시토회 수녀원으로 보냈다고 한다. 그는 실제 시토회 회원으로 서원하지는 않았지만 수도원 경내에서 엄격한 보속생활을 하며 여생을 지냈다. 그에 대한 공경은 1702년에 승인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