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블라디미르는 956년경 러시아의 고대국가인 류리크(Ryurik) 왕조의 스뱌토슬라프(Svyatoslav) 왕자의 사생아로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키이우(우크라이나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로 과거 러시아에서는 키예프[Kiev]로 불렀다)에서 태어났다. 그는 성녀 올가(Olga, 7월 11일)의 손자로서 970년에 아버지인 스뱌토슬라프에 의해 ‘새로운 도시’라는 뜻을 지닌 노브고로드(Novgorod)의 왕자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972년 아버지가 전투에서 사망한 후 형제들의 상속 분쟁이 전쟁으로 비화하면서 동생인 야로폴크(Yaropolk)가 977년에 다른 동생인 올렉(Oleg)을 살해하자 두려움에 스웨덴으로 도망쳐야 했다. 성 블라디미르는 대부분 스웨덴 출신으로 오늘날의 벨라루스 · 러시아 · 우크라이나 지역에 정착한 바랑기아인(Varangians) 군대를 모아 978년에 러시아로 돌아왔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서 발트해까지 러시아 전역에 대한 지배권을 놓고 야로폴크와 싸워 승리한 후 키이우 대공의 자리에 올랐다. 러시아의 유일한 통치자가 된 그는 980년경에 블라디미르 대왕(Vladimir the Great)이라는 이름으로 키이우 대공으로 선포되었다. 여전히 이교도였던 그를 신앙으로 이끌기 위해 로마 가톨릭교회와 비잔틴 정교회,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사절이 와서 노력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동방 정교회가 그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는 키이우를 중심으로 삼아 러시아 사람들을 하나의 국가로 통합하고자 했고, 종교적인 이유보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정교회를 선택했다. 그는 988년에 크림반도의 헤르손(Cherson)을 점령해 비잔틴 제국의 바실리우스 2세(Basilius II) 황제에게 돌려주는 조건으로 황제의 여동생인 안나(Anna) 공주와의 결혼을 요구하였다. 황제는 그 결혼을 허락하면서 성 블라디미르가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래서 성 블라디미르는 988년 주님 공현 대축일 또는 그해 7월 28일 결혼식 당일 타우리카 케르소네소스(Taurica Chersonesos, ‘타우리카 반도’라는 뜻으로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항구도시인 헤르손)에서 미하일 대주교에게 세례를 받으며, 황제를 존중하는 의미로 ‘바실리/바실리오’(Vasily/Basilius)라는 세례명을 선택했다. 그리고 자신에 이어서 키이우의 주민들도 모두 세례를 받도록 했다. 성 블라디미르 1세의 개종은 러시아에서 그리스도교가 본격적으로 탄생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리스도인이 된 그는 자신의 생활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과거에 폭력적이고 방탕한 생활에서 벗어나 온화하고 평화로운 통치자로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두게 되었다. 또한 학교와 성당을 세우는 한편 이교도의 신전과 우상들을 파괴했으며, 그리스에서 선교사들을 영입하였다. 그는 로마와도 대사를 교환하고, 특별히 보니파시오(Bonifatius)라는 수도명으로 잘 알려진 퀘르푸르트(Querfurt)의 성 브루노(Bruno, 3월 9일) 주교의 선교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그는 1015년 7월 15일 키이우 남쪽 외곽에 있는 베레스토브(Berestove) 별장에서 선종해 자신이 건립한 성모 영면 성당(성 블라디미르가 자기 소득과 재산의 십일조를 따로 모아 건립하고 유지했기에 보통 ‘십일조 성당’으로 불린다)에 아내와 할머니인 성녀 올가와 함께 묻혔다. 성 블라디미르 1세는 러시아 가톨릭의 수호자이자 콘스탄티누스 대제처럼 ‘사도적 통치자’로서 일찍이 정교회에서 성인으로 공경을 받았다. 정교회는 7월 15일뿐만 아니라 그가 세례를 받은 7월 28일도 축일로 경축하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는 21세기 초에 이날을 국가적 기념일로 정하기도 했다. 그는 교회 미술에서 왕관을 쓰고 십자가와 칼을 든 모습으로 묘사되며, 두 명의 아들 순교자인 성 보리스(Boris)와 성 글렙(Gleb, 이상 7월 24일)과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새천년기 초에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이미 러시아 정교회에서 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던 성 블라디미르 1세의 이름을 “로마 순교록”에 포함하였다. 그래서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7월 15일 목록에서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키이우에서 성 블라디미르 대공이 바실리오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자신이 통치하는 민족들 사이에 진정한 신앙을 전파하는 데 노력했다고 기록하였다. 성 블라디미르 1세는 성 볼로디미르 1세(Volodymyr I)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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