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비투스(또는 비토)는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부터 큰 공경을 받았으나 그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거의 전해지지 않았다. 전설적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시칠리아섬(Sicilia Is.)에서 원로원 의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이교도로서 우상을 신봉하는 사람이었으나 유모인 성녀 크레센시아(Crescentia)와 그녀의 남편이자 가정교사였던 성 모데스토(Modestus)는 열심한 그리스도교 신자였다. 이들에게 감화된 성 비토는 12살 때에 그들의 인도로 남몰래 세례성사를 받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아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써보았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다. 결국 총독의 힘을 빌려 아들의 마음을 돌리려고 그리스도인으로 고발까지 했다. 총독은 훈계와 고문까지 가하며 신앙을 포기시키려 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형리가 채찍으로 그를 때리려 팔을 들자 그 팔이 마비되었고, 성 비토가 기도로써 치유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래서 총독은 그를 다시금 아버지에게 돌려보냈다. 실망한 아버지는 아들을 집에 가두고 문틈으로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두 천사가 자기 아들과 함께 있었고, 그들에게서 나오는 빛에 눈이 멀고 말았다. 아버지는 세상의 쾌락이나 아름다운 여성을 이용해 아들의 신앙을 포기시키려고도 했으나 그 또한 실패하고 말았다. 성 비토는 더는 아버지의 집에 머무르며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유모 부부와 함께 집을 나와 배를 타고 오늘날의 이탈리아 남부 타란토만(Taranto灣) 서북방에 있는 루카니아(Lucania, 오늘날의 바실리카타) 지방에 이르렀다. 세 사람은 그곳에서 잠시나마 평화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고, 성 비토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고 하느님께 기도하여 많은 기적을 행하였다. 하지만 곧 주위의 이교도들에 의해 고발되어 재차 법정에 서게 되었고 로마(Roma)까지 끌려갔다. 그러던 중 그리스도교에 대한 혹독한 박해를 가했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년 재위)의 아들이 간질에 걸렸고, 사람들은 그가 악령에 사로잡혔다고 생각했다. 황제는 루카니아에서 성 비토가 행한 기적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를 불러오라고 했다. 성 비토는 주님의 이름으로 황제 아들의 머리에 손은 얹어 악령을 쫓아내고 병을 고쳐주었다. 이러한 공로에도 불구하고 황제는 고마워하기보다는 성 비토에게 신앙을 버리고 로마의 신상 앞에 희생 제물을 바치라고 요구했다. 성 비토가 끝까지 우상 숭배를 거부하자 황제는 성 비토와 그 일행이 마술로 사람들을 속인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가두고 갖가지 고문을 가했다. 전설에 따르면 그들 모두 납과 기름과 역청이 펄펄 끓는 가마 속에 던져졌으나 하느님의 보호하심으로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다고 한다. 화가 난 재판관은 맹수의 밥으로 만들려고 사자 굴에 넣었지만, 맹수들이 양순해져 발을 핥을 뿐 덤벼들지 않아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세 사람은 참수형을 받아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 그들의 시신은 다른 그리스도인 여성이 수습해 매장할 때까지 여섯 마리의 독수리가 지켰다고 한다. 성 비토에 대한 공경은 중세 시대에, 특히 독일과 그 인근 지방에서 활발히 행해졌고 그의 유해 일부가 작센(Sachsen)으로 이장되었다. 그를 표현한 상본이나 교회 미술을 보면 보통 한 소년이 순교를 상징하는 팔마 가지를 손에 들거나, 펄펄 끓는 가마 속에서도 멀쩡히 살아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성 비토는 배우와 무용수, 간질환자의 수호성인이며 중세 유럽에서 공경받던 14명의 구난 성인(救難 聖人, Holy Helpers) 가운데 한 명이다. 중세 후기 독일과 라트비아(Latvia) 등 일부 국가에서는 성 비토의 축일에 그의 성인상 앞에서 춤을 추며 축제를 지냈는데, 그 춤이 인기를 얻어 ‘성 비토의 춤’(Saint Vitus Dance)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뇌전증(간질)이나 신경장애 같은 병을 지닌 이들이 성 비토의 춤을 통해 치유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는 또한 폭풍우나 야생동물로부터 보호해주는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옛 “로마 순교록”은 6월 15일 목록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시대에 시칠리아에서 바실리카타로 온 성 비토와 성 모데스토와 성녀 크레센시아가 혹독한 고문을 당했으나 하느님의 능력으로 아무런 해도 입지 않고 모든 신앙의 전투를 마쳤다고 전해주었다. 성 비토와 성 모데스토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을 타원형으로 둘러싼 열주 위에 세워진 140명의 성인 입상의 주인공으로 오래전부터 공경을 받아왔다. 그런데 성 비토에 관한 역사적 자료도 부족하고, 성 모데스토와 성녀 크레센시아에 관한 별도의 전설이 나중에 성 비토 이야기와 결합했다고 보아 1969년 전례력을 개정하면서 유모 부부의 이름이 삭제되고 그들의 축일 또한 로마 보편 전례력에서 빠졌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6월 15일 목록에서 간단히 바실리카타 지방에서 성 비토 순교자를 기념한다고만 기록하고 유모 부부에 대해서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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