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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랄르망(10.19)

가브리엘 랄르망(10.19)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인쇄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가브리엘 랄르망 (Gabriel Lalemant)
축일 10월 19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부, 선교사, 순교자
활동지역 캐나다(Canada)
활동연도 1610-1649년
같은이름 가별, 랄레망
성인 기본정보

   성 가브리엘 랄르망은 1610년 10월 3일 프랑스 파리(Paris)에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여섯 형제 중 다섯이 사제와 수도자의 길을 걸었고, 두 명의 삼촌 또한 예수회원으로서 이미 뉴프랑스(캐나다)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었다. 샤를 랄르망(Charles Lalemant) 삼촌은 캐나다 예수회 인디언 선교부의 초대 책임자였고, 제롬 랄르망(Jerome Lalemant) 삼촌은 퀘벡 지방의 예수회 관구장이었다. 1625년 샤를 랄르망이 성 요한 드 브레뵈프(Joannes de Brebeuf) 신부 등과 함께 캐나다 선교를 위해 떠난 후 어린 성 가브리엘 랄르망도 같은 길을 가려는 열망을 품게 되었다. 그는 파리의 클레르몽(Clermont) 대학에서 공부하고 20살 때인 1630년 3월 24일 예수회에 입회하여 파리의 수련소에 들어갔다. 1632년 3월 25일 첫 서원을 하고 물랭(Moulins)에서 3년간 교사로 활동한 후 부르주(Bourges)에서 필요한 공부를 마치고 1638년 사제품을 받았다. 그러면서 그는 마음속으로 선교 현장에서 순교하겠다는 맹세를 했다.

   하지만 그는 장상으로부터 해외 선교에 대한 승낙을 얻지 못했다. 매년 선교사로 보내주길 청했지만, 그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장상들은 그가 뉴프랑스보다 프랑스에서 하느님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라 플레슈(La Fleche)와 물랭의 예수회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1644년부터는 부르주에서 교수로 활동했다. 하지만 1646년 마침내 그의 청이 받아들여져 캐나다 휴런족 인디언 선교부로의 파견이 결정되었다. 이는 아마도 그의 삼촌인 샤를 랄르망이 그곳의 책임자로 임명되었기에 가능했던 듯하다. 그해 9월 20일 성 가브리엘 랄르망이 퀘벡에 도착했는데, 그는 1642년부터 1649년 사이에 캐나다에서 순교한 8명의 예수회원 중 마지막으로 캐나다에 도착한 회원이었다. 처음 2년 동안 성 가브리엘 랄르망은 퀘벡과 무역 중심지인 세 개의 강(Three Rivers) 지역에서 휴런족의 언어와 관습을 익히며 지냈다.

   1648년 8월 그는 가죽 거래를 위해 퀘벡의 프랑스 정착촌에 온 휴런족과 함께 출발해 9월 웬다케(Wendake)에 있는 생트마리(Sainte-Marie) 마을 선교부에 도착했다. 그는 그곳에서 선교 활동 중인 성 요한 드 브레뵈프 신부를 보조하는 임무를 맡았다. 1649년 초 선교단의 책임자인 성 요한 드 브레뵈프 신부를 보좌해 휴런족의 마을들을 방문하였다. 3월 15일 휴런족의 생루이(Saint-Louis) 마을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그날 밤 휴런족과 프랑스에 대해 적대적인 이로쿼이족(Iroquois)이 생이니스(Saint-Ignace) 마을을 습격했다. 생루이 마을이 초토화되고 많은 휴런족이 학살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생루이 마을의 지도자들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여자들과 아이들을 숲으로 피신시켰다. 성 요한 드 브레뵈프와 성 가브리엘 랄르망 신부는 끝까지 양들과 함께하기 위해 마을을 떠나지 않았다.

   다음날, 3월 16일 새벽 이로쿼이족이 생루이 마을로 쳐들어와 휴런족과 선교사들을 포로로 잡았다. 이로쿼이족과 함께 온 휴런족의 배교자는 ‘검은 옷’을 입은 예수회 선교사 중 가장 높은 사람을 잡았다며 잔혹한 고문을 권했다. 이로쿼이족은 오두막에 있는 병자와 노인들을 학살하고 마을을 불 지른 후 선교사들의 옷을 벗기고 손톱을 뽑고 손가락을 부러뜨렸다. 그리고 그들을 생이니스 마을로 끌고 가 가장 잔혹한 고문을 이어갔다. 3월의 엄동설한에 알몸으로 세워두고 코와 입술을 자르고 불에 달궈진 쇠사슬을 어깨 위에 올려놓았으며, 세례성사를 조롱하듯 끓는 물을 그들 머리 위에 쏟아부었다. 1649년 3월 16일 오후 4시경 성 요한 드 브레뵈프 신부는 동료 순교자들을 격려하며 숨을 거두었다. 성 가브리엘 랄르망 신부에 대한 고문은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손을 자르고 불타는 장작을 입에 넣는 등 잔혹한 고문 끝에 3월 17일 오전 9시쯤 그 또한 순교하였다. 두 순교자의 시신은 동료 예수회원에 의해 발견되어 생트마리 마을로 옮겨졌고, 이듬해에 퀘벡으로 옮겨 안장하였다.

   성 요한 드 브레뵈프 신부와 성 가브리엘 랄르망 신부를 포함한 7명의 동료 순교자들은 1925년 6월 21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30년 6월 29일 로마에서 같은 교황에 의해 ‘캐나다의 순교자’(수호성인) 또는 ‘북미의 첫 순교자들’로서 성인품에 올랐다. 그들의 기념일은 로마 보편 전례력의 9월 26일에 추가되었으나 1969년 전례력 개정 이후부터 성 이사악 조그(Isaac Jogues)가 순교한 다음 날인 10월 19일(10월 18일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과 중복을 피하고자)로 변경해 기념하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3월 17일 목록에서 캐나다 온타리오주(Ontario州)의 휴런족 지역에서 그들의 언어로 하느님의 영광을 선포하며 헌신하던 예수회의 성 가브리엘 랄르망 신부가 적대적인 우상 숭배자들에게 붙잡혀 매우 잔인한 고문을 당하고 순교했다고 전해주었다. 그리고 10월 19일 목록에서 성 요한 드 브레뵈프와 성 가브리엘 랄르망 신부와 동료 순교자들의 선교활동과 순교 사실을 전하며 그날 그들 여덟 명 모두를 함께 기념한다고 기록하였다.♣

참고자료

  • 조지프 틸렌다 저, 박병훈 편, 예수회 성인들 - 예수회 고유미사에서 기념하는 성인과 복자의 약전, 서울(도서출판 이냐시오영성연구소), 2014년, 237-2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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