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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스문도(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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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시지스문도 (Sigismund)
축일 5월 1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활동지역 부르고뉴(Bourgogne)
활동연도 +524년
같은이름 시기스몬드, 시지스문두스, 시지스문드, 지기스문트
성인 기본정보

   성 시지스문두스(Sigismundus, 또는 시지스문도)는 부르고뉴 왕국의 왕인 군도바드(Gundobad)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프랑스 남동부와 스위스 남서부는 아리우스파(Arianism)에 속한 군도바드 왕의 통치를 받았다. 비엔(Vienne)의 주교인 성 아비토(Avitus, 2월 5일)는 군도바드 왕을 개종시키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가 죽기 전에 왕위를 계승한 그의 아들 성 시지스문도를 가톨릭으로 개종하도록 이끌고 세례를 주었다. 성 시지스문도는 515년에 스위스 남부 발레(Valais) 지방의 아가우눔(Agaunum, 오늘날 스위스의 생 모리스[Saint-Maurice])에 폐허로 방치된 생 모리스 수도원을 개축하고 많은 수도승을 데려와 살 수 있도록 후원하였다. 그는 아내와 사별한 후 재혼했는데, 둘째 아내의 모략으로 첫째 부인의 아들을 정적으로 오해해 죽이는 큰 죄를 저질렀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성 아비토 주교에게 털어놓았고, 참회와 보속을 위해 한동안 생 모리스 수도원에 들어가 지냈다.

   523년에 성 시지스문도는 부르고뉴로 돌아왔다. 하지만 부르고뉴 왕국의 정치적 불안정을 틈타 프랑크 왕국의 왕 클로비스 1세(Clovis I)의 둘째 아들인 오를레앙(Orleans)의 클로도미르(Clodomir) 왕이 쳐들어왔다. 전쟁에서 패한 성 시지스문도는 포로가 되어 오를레앙으로 끌려갔다. 성 아비토 주교는 그를 살리기 위해 클로도미르를 설득했으나 실패하였다. 클로도미르는 ‘적을 뒤에 남겨두라는 것은 어리석은 조언’이라며 성 아비토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524년에 성 시지스문도와 그의 아내와 아이들을 오를레앙 근처 쿨미에(Coulmiers) 마을에서 우물에 빠뜨려 살해하였다. 그 후 3년 뒤에 성 시지스문도의 유해가 발견되어 아가우눔의 생 모리스 수도원에 있는 성 요한 성당으로 이장되었다. 그리고 쿨미에의 우물에서 많은 기적이 일어나면서 그 위에 성당이 세워졌고, 성 시지스문도는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유해는 여러 지방으로 나뉘어 프랑스와 스위스뿐만 아니라 독일, 이탈리아, 에스파냐, 폴란드, 헝가리 등에서도 그에 대한 공경이 이루어졌다.

   옛 “로마 순교록”은 5월 1일 목록에서 스위스 남부 발레주의 시옹(Sion)에서 부르고뉴의 왕이었으나 우물에 빠져 죽은 후 기적으로 유명해진 성 시지스문도를 기념한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오늘날 스위스에 속한 생모리스앙발레(Saint-Maurice-en-Valais)에 부르고뉴의 왕이자 아리우스파에서 가톨릭 신앙으로 개종한 성 시지스문도가 묻혔는데, 그는 고행과 눈물과 단식으로 자기가 저지른 죄를 참회하기 위해 순교자들의 무덤 앞에서 끊임없이 찬미가를 낭송하는 수도승들의 성가대를 설립했으며, 적대자들에 의해 오를레앙 지역의 우물에 던져져 익사한 후 발견되었다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순교자로서 공경받아온 그에 대해 더는 순교자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았다.♣

사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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