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시칠리아(Sicilia) 섬의 타오르미나(Taormina)에서 태어난 마태오(Matthaeus)는 볼로냐(Bologna)에서 수학하여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법률을 가르치는 등 화려한 경력의 소지자였다. 그는 시칠리아의 국왕 만프레드(Manfred)의 수상이 되었으나 베네벤토(Benevento) 전투에서 심한 부상을 입고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이때 한 수도자가 만일 하느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봉헌한다면 완쾌되리라는 약속을 했는데, 이것이 사실로 나타나자 그는 성 아우구스티누스 은수자회에 평수사로 입회하여 아우구스티누스 노벨로(Augustinus Novello, 또는 아우구스티노 노벨로)라는 수도명을 택했다. 후일 교황 니콜라우스 4세(Nicolaus IV)는 그를 교황청의 고해신부로 임명했고, 교황 보니파티우스 8세(Bonifatius VIII)는 그를 시에나(Siena)의 교황대사로 임명하였다. 1298년 아우구스티누스 노벨로는 수도회의 총장으로 선출되었지만 2년 뒤에 은퇴하고 자신이 세운 산 레오나르도(San Leonardo) 은둔소에 숨어 여생을 마쳤다. 그에 대한 공경은 1759년 교황 클레멘스 13세(Clemens XIII)에 의해 승인되었다. 교회미술에서 그는 책을 들고 있고 천사로부터 귓속말을 듣는 아우구스티누스회 수도승으로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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