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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드레아스 코르시니(Andreas Corsini, 또는 안드레아 코르시니)는 1301년 또는 1302년 11월 30일 사도 성 안드레아 축일에 이탈리아 중부 피렌체(Firenze)의 명문 귀족인 코르시니 가문(家門)에서 태어났다. 신심 깊은 신앙인이었던 그의 아버지 니콜라스 코르시니(Nicholas Corsini)와 어머니 페레그리나(Peregrina, 일부 자료에서는 젬마[Gemma]라고 한다)는 결혼 후 오랫동안 자녀가 없어서 근심하며 기도하던 중 아이를 가졌고, 성 안드레아 축일에 그를 낳아 아기 이름을 안드레아로 지었다. 그의 어머니는 태중의 아기를 동정 성모 마리아의 보호하심에 맡기며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성 안드레아는 어린 나이에 학교에 들어가 비상한 재능을 발휘하기도 했으나 성질이 난폭하고 고약해 늘 동생들을 울리곤 했다. 변덕스러운 젊은 귀족으로서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향락에 돈을 탕진하고 방탕한 생활에 빠져 어머니의 눈물과 기도가 그치지 않았다.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부모에게까지 대드는 그를 어느 날 어머니가 따로 불렀다. 그를 꾸짖으며 늘 두려움 속에 간직하고 있던 태몽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머니는 동정 마리아께 간절히 전구를 청해 아기를 갖게 되었고, 그가 태어나기 전에 늑대를 낳는 꿈을 꾸었는데 그 늑대가 성당으로 들어가자 어린 양으로 변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어머니의 태몽을 들은 성 안드레아는 자신이 정말 동물(늑대)처럼 살았음을 깨닫고 어머니가 동정 성모께 서원을 발한 피렌체의 가르멜회 성당을 몰래 찾아가 오랫동안 기도한 후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1318년에 그는 피렌체 근처 피에솔레에 있는 가르멜회(Ordo Fratrum Beatae Mariae Virginis de Monte Carmelo, OCarm)에 입회하였다. 수련기를 시작하면서 그는 엄격한 고행과 침묵 그리고 기도에 집중하여 명문 귀족 출신의 말썽꾸러기에서 아주 모범적인 수도자로 변신하였다. 그는 수도원의 청소나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수행하며 겸손의 덕을 쌓아갔다. 1328년 사제품을 받은 후 성대히 첫 미사를 봉헌하길 원했던 부모의 뜻과는 달리, 그는 교외의 작은 수도원 성당에서 조용히 첫 미사를 봉헌했다. 그는 피렌체서 잠시 지낸 후 학업을 마치기 위해 프랑스 파리(Paris)의 대학교로 갔다. 그리고 3년 뒤에 아비뇽(Avignon)으로 가서 삼촌인 코르시니 추기경 밑에서 공부를 이어갔다. 1332년 피렌체로 돌아온 그는 그곳 가르멜회 수도원의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금욕적인 삶을 실천하며 사람들을 회심으로 이끄는 특별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설교와 모범을 통해 사람들이 세속적인 삶에서 종교적인 삶으로 돌아서도록 함으로써 ‘피렌체의 사도’이자 ‘기적을 행하는 자’라는 칭호를 얻었다. 1348년 메스(Metz)에서 열린 총회에서 그는 가르멜회의 토스카나(Toscana) 관구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1349년 피렌체 근처 피에솔레의 주교가 페스트로 사망하자 그가 그해 10월 13일 후임 주교로 선출되었다. 그런데 주교직이 자신에게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한 그는 이를 모면하고 싶은 마음에 멀리 도망가서 엔나(Enna)에 있는 카르투지오회 수도원에 몸을 숨겼다. 하지만 한 아이가 그를 발견하여 알리자 결국은 주교직을 수락하고 돌아와서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주교가 된 뒤에도 그는 더 철저한 금욕 생활과 고행을 실천하였다. 그리고 드러나지 않게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자선 활동을 펼쳤는데, 매주 목요일마다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가 발을 씻겨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는 또한 주교로서 분쟁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교황 복자 우르바노 5세(Urbanus V, 12월 19일)는 그의 능력을 알아보고 통치자와 백성들 간에 치열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던 볼로냐(Bologna)의 분쟁 해결을 위해 그를 교황사절로 임명해 파견하였다. 처음에 양측 모두 그를 비웃었지만, 결국은 그의 중재로 마음을 열고 평화를 회복하였다. 늘 겸손한 자세로 엄격한 생활을 실천하며 가난한 이와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을 사랑했던 성 안드레아는 1372년 주님 성탄 대축일 밤미사를 봉헌하다가 성모님의 발현을 보았는데, 성모님은 그가 주님 공현 대축일(삼왕 내조 축일)에 임종할 것임을 미리 알려주었다고 한다. 그 말씀대로 성 안드레아는 병상에 누웠다가 1373년 1월 6일 피에솔레에서 선종하여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Santa Maria del Carmine) 성당에 안장되었다. 성 안드레아 코르시니 주교가 선종한 후 피렌체 시민들은 즉시 그를 성인으로 공경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무덤에서 수많은 기적이 일어나자 교황 에우제니오 4세(Eugenius IV)는 그에 대한 공경을 허락하며 시성 절차를 시작하였다. 그는 1440년 에우제니오 4세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고, 1629년 4월 22일 교황 우르바노 8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1737년 코르시니 가문 출신인 교황 클레멘스 12세(Clemens XII)는 로마의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당(Basilica di San Giovanni in Laterano) 내에 그를 기념해 아름다운 성 안드레아 코르시니 경당을 만들어 봉헌했다. 그의 축일은 17세기에 로마 보편 전례력에 포함되면서 2월 4일로 지정되었다. 1969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른 전례력 개정 이전까지 그날을 축일로 지냈지만, 그 뒤로는 교회의 전통대로 그가 선종한 날인 1월 6일로 옮겨 기념하고 있다. 가르멜회에서는 그의 축일을 1월 9일에 기념한다. 옛 “로마 순교록”은 1월 6일 목록에서 피렌체 출신의 가르멜회 수도자이자 피에솔레의 주교였던 성 안드레아 코르시니가 기적을 행한 것으로 유명하며, 우르바노 8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라 2월 4일에 축일을 기념한다고 전해주었다. 그리고 2월 4일 목록에서는 1월 6일에 선종한 피에솔레의 주교 성 안드레아 코르시니를 이날 피렌체에서 기념한다고 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월 6일 목록에서 토스카나 지방 피에솔레의 성 안드레아 코르시니는 가르멜회 주교로서 금욕적인 삶과 성경에 대한 충실한 묵상으로 유명했고, 역병으로 황폐해진 수도원을 복구하고 교구를 현명하게 다스리며 가난한 이들을 위로하고 적대적인 관계에 놓인 이들을 화해시켰다고 기록하였다. 성 안드레아 코르시니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을 타원형으로 둘러싼 열주 위에 세워진 140명의 성인 입상의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라틴어로는 성 안드레아 코르시누스(Andreas Corsinus, 또는 안드레아 코르시노)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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