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안토니우스 마리아 푸치(Antonius Maria Pucci, 또는 안토니오)는 이탈리아 피스토이아(Pistoia)의 포지오네(Poggione) 출신으로 어느 가난한 농부의 일곱 자녀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고, 에우스타시우스(Eustasius)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마음이 유순하고 남을 돕기를 좋아하던 그는 특히 본당 일에 열성이었다. 1837년 그는 피렌체(Firenze)에 있는 성모의 종 수도원에 입회하였고, 그때 안토니우스 마리아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평수사이던 그는 매우 정직하고 모범적인 생활 태도로 말미암아 동료들 가운데서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관심사는 기도와 순종이었고 그 다음이 공부였다. 이윽고 그는 1843년에 사제가 되자 조그마한 어항인 비아레조(Viareggio)의 본당신부가 되어 일생을 그곳에서 지냈다. 주민들은 그를 '작은 거인'으로 불렀다. 그는 본당의 요구가 있으면 무슨 단체든지 조직하였지만, 항상 거룩한 사랑의 생활이란 목표를 뚜렷하게 심어주었고, 자신이 먼저 모범적인 삶을 보임으로써 신자들도 본받게 헸기 때문이었다. 1854년과 1866년 두 차례에 걸쳐 전염병이 돌았을 때 그의 사랑은 더욱 돋보였고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는 직접 간호대를 조직하여 활동하였고, 어린이와 청년들의 교육을 위한 봉사대를 발족시켜 본당사목의 본보기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주민들의 사제'였다. 그는 1962년 교황 요한 23세(Joannes X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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