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가까이 이탈리아 베르첼리(Vercelli)의 주교로 재임한 성 알베르투스 히에로솔리미타누스(Albertus Hierosolymitanus, 또는 알베르토)는 파르마(Parma)의 저명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신학과 법률을 공부한 후 롬바르디아 지방 모르타라(Mortara)의 성 십자가 수도원에 입회해 수도자가 되었다. 1180년 수도원장으로 선출되었고, 이어서 1184년 보비오(Bobbio)의 주교, 그리고 몇 년 후 베르첼리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는 뛰어난 외교적 재능으로 인해 교황 클레멘스 3세(Clemens III)와 프레드리히 바르바로사(Frederick Barbarossa) 황제의 중재자로 선출되기도 했고, 1199년에는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Innocentius III)에 의해 북이탈리아의 교황사절로 임명되어 파르마(Parma)와 피아첸차(Piacenza) 간의 전쟁을 끝내도록 도왔다. 1187년 사라센인들이 예루살렘을 재점령한 후 위험에 처한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1205년경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Innocentius III)는 신자들과 이슬람교 신자 모두로부터 존경받던 성 알베르투스를 예루살렘의 총대주교로 임명했다. 또한 교황특사로서 예루살렘 성지를 돌보도록 했다. 그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평화적 공존을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다. 1209년경 그는 총대주교로서 카르멜산의 은수자들을 위해 규칙서를 만들어줬는데, 이는 특별히 성 알베르투스의 카르멜회 규칙으로 불린다. 이미 오래전부터 특별한 창설자가 없이 가르멜산에 은수자들이 모여 살았는데, 이 첫 회칙은 기존 은수자들의 삶과 정신을 간단하고 엄격하게 정리한 것으로, 1247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4세에 의해 이 규칙을 따르는 이들이 탁발(托鉢) 수도회로 인준받았다. 그리고 그는 예루살렘 왕국과 키프로스 왕국, 성전 기사단과 실리시아(Cilicia)의 아르메니아 왕국 간의 분쟁을 중재하기도 했다. 1214년 그는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로부터 제4차 라테라노(Laterano) 공의회에 참석하도록 초청받았지만 끝내 참석하지 못했다. 이는 부도덕한 행동으로 인해 책망받고 면직된 성령 병원의 한 책임자가, 9월 14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행렬이 진행될 때 그에게 앙심을 품고 칼로 찔러 살해했기 때문이다. 비록 그는 공식적으로 시성되지는 않았으나 가톨릭교회 안에서 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그의 축일은 전례적으로 9월 17일에 기념하고 있는데, 지역과 카르멜회에 따라 4월 8일, 9월 14일, 9월 25일에 기념하기도 한다. 그는 베르첼리의 성 알베르투스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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