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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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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알베르토 (Albert)
축일 9월 14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총대주교
활동지역 예루살렘(Jerusalem)
활동연도 +1214년
같은이름 아보가드로, 알버트, 알베르또, 알베르뚜스, 알베르투스, 앨버트
성인 기본정보

   성 알베르투스 아보가드로(Albertus Avogadro, 또는 알베르토)는 1150년경 이탈리아 북부 파르마(Parma)의 저명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지만, 그는 신학과 법률을 공부한 후 롬바르디아(Lombardia) 지방 모르타라(Mortara)에 있는 성 십자가 수도원에 입회해 수도자가 되었다. 그는 사제품을 받은 후 1180년 수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성 알베르토는 1184년 35살 정도의 젊은 나이에 보비오(Bobbio)의 주교로 임명되었고, 바로 다음 해에 베르첼리(Vercelli)의 주교로 임명되어 오랫동안 주교직을 수행하였다. 그는 공식적인 교구장 직무 외에도 뛰어난 외교적 재능으로 인해 교황 클레멘스 3세(Clemens III)와 프리드리히 1세(Friedrich I Barbarossa) 황제의 중재자로 선출되어 교회와 신성로마제국과의 화해를 이끌었다. 1199년에는 교황 인노첸시오 3세(Innocentius III)에 의해 이탈리아 북부의 교황사절로 임명되어 파르마와 피아첸차(Piacenza) 간의 전쟁을 끝내고 평화 조약을 맺도록 도왔다.

   1099년 제1차 십자군 전쟁으로 라틴 예루살렘 왕국이 세워졌으나 1187년 제3차 십자군 전쟁 중에 살라딘(Saladin)이 이끄는 사라센인들이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팔레스티나(Palestina) 대부분을 탈환한 후 라틴 총대교구청도 이스라엘 북부 갈릴래아 서쪽의 항구도시인 아크레(Acre, 히브리어로 아코[Akko], 아랍어로 아카[Akka])로 이전하였다. 1203년 미카엘 총대주교가 선종하자 예루살렘 주님 무덤 성당의 사제들과 신자들은 팔레스티나까지 그의 성덕과 능력이 잘 알려진 베르첼리의 성 알베르토를 후임자로 보내주도록 요청했다.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위험에 처한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1205년에 성 알베르토를 예루살렘의 총대주교이자 팔레스티나의 교황특사로 임명해 예루살렘 성지를 돌보도록 했다. 아크레에 자리 잡은 그는 말과 모범으로 그리스도인과 그 지역의 무슬림 사이의 평화적 공존을 위해 큰 노력을 기울여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무슬림에게도 존경과 신뢰를 받았다.

   12세기 후반 서방교회에서 온 일부 프랑크족 은수자들이 팔레스티나의 카르멜산에 정착해 살고 있었다. 카르멜산은 오늘날 이스라엘 북부 최대 도시이자 항구도시인 하이파(Haifa) 인근에서 지중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구약시대 예언자 엘리야(Elias, 7월 20일)가 제자들과 함께 살았던 전통이 있는 곳이다. 이탈리아 남서부 칼라브리아(Calabria) 출신 십자군 기사단과 함께 예루살렘 성지로 왔던 복자 베르톨드(Berthold, 3월 29일)가 1155년경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카르멜산에 정착해 은수 생활을 시작한 후 카르멜산의 은수자 수는 꾸준히 증가했다. 1188년경 복자 베르톨드가 선종한 후 후임 수도원장이 된 복자 브로카르도(Brocardus, 9월 2일)는 카르멜산의 은수자들을 위한 규칙서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1207년경 예루살렘의 총대주교인 성 알베르토에게 은수자들을 위한 통합된 규칙서 제정을 요청했다. 성 알베르토는 성 아우구스티노(Augustinus)의 수도 규칙을 기초로 카르멜산의 은수자들을 위한 규칙서를 만들어주었다. ‘성 알베르토의 카르멜회 규칙서’로 불리는 이 첫 회칙은 기존 은수자들의 삶과 정신을 간단하고 엄격하게 정리한 것으로 1247년 교황 인노첸시오 4세에 의해 이 규칙을 따르는 이들이 탁발(托鉢) 수도회로 인준받았다.

   성 알베르토는 재임 중에 예루살렘 왕국과 키프로스 왕국, 성전 기사단과 실리시아(Cilicia)의 아르메니아 왕국 간의 분쟁을 중재하기도 했다. 1214년 그는 교황 인노첸시오 3세로부터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Concilium Lateranense Quartum, 1215년 11월 11일 개회)에 참석하도록 초청받았지만 끝내 참석하지 못했다. 이는 부도덕한 행동으로 인해 책망받고 면직된 아크레의 성령 병원 책임자가 1214년 9월 14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행렬이 진행될 때 그에게 앙심을 품고 칼로 찔러 살해했기 때문이다. 일찍부터 그는 가톨릭교회 안에서 성인으로 또 순교자로서도 공경을 받았는데, 일부 자료에 따르면 1609년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에 의해 그에 대한 공경이 승인되었다고 한다. 카르멜회는 보통 9월 17일에 그를 기념해 왔는데, 그 외에도 4월 8일(규칙서를 전달한 날로 추정), 9월 25일도 기념일로 언급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에서 그의 이름을 찾을 수는 없지만,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9월 14일 목록에서 베르첼리 교회에서 예루살렘 교회로 온 성 알베르토 주교가 카르멜산의 은수자들을 위한 규칙을 썼고, 팔레스티나의 아코에서 성 십자가 현양 축일 행렬 중에 그에게 질책당한 악한 사람의 칼에 찔려 숨을 거두었다고 기록하였다. 예루살렘의 성 알베르토는 ‘베르첼리의 성 알베르토’로도 불린다.♣

사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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