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남서부 슈바벤(Schwaben)의 귀족 가문 출신인 성 오토는 아주 젊은 나이에 사제로 서품된 후, 1090년부터 하인리히 4세 황제 궁에 들어가서 1101년에는 그의 수상이 되었다. 그는 성좌와 황제간의 알력이 발생했을 때, 아주 용감하게 황제를 반대하여 큰 파문을 일으켰고, 그 황제에 의하여 밤베르크의 주교로 임명되었을 때에도 교황 파스칼 2세(Paschalis II)가 자신을 축성해 줄 때까지 황제의 명을 거부했던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하인리히 5세 황제와 교황 간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신명을 다 바쳤으며, 폴란드의 볼레슬라오 3세를 초청하여 동 포모제(Pomorze) 선교를 시작하여 수천 명의 개종자를 얻기도 하였다. 그는 1189년 교황 클레멘스 3세(Clemens 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 오토는 매우 지혜로운 성직자였을 뿐만 아니라 수도원의 후원자였다. 그는 포모제(독일과 폴란드 북부 발트해 남안 지대)의 사도로서 공경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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