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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프(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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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올라프 (Olaf)
축일 7월 29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 순교자
활동지역 노르웨이(Norway)
활동연도 995-1030년
같은이름 올라보, 올라부스, 올라오, 올라우스
성인 기본정보

   성 올라프 2세(Olaf/Olav II)는 995년 노르웨이에서 소왕(小王)이었던 하랄드 그렌스케(Harald Grenske)와 귀족의 딸인 아스타(Asta)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노르웨이어로 올라프라는 이름 뒤에 ‘디그레’라는 별명을 붙여서 ‘올라프 디그레’(Olav Digre)로 불렸는데, ‘디그레’는 ‘보통보다 덩치가 크고 뚱뚱하다’라는 뜻과 ‘성격이 거칠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성 올라프는 누구보다 대담하고 재빠르며 힘과 지능 모두에서 어른다운 면모를 보였기에 후자의 의미가 더 적절해 보인다. 그는 바이킹족의 관습대로 12살 때 처음으로 군함에 올라 유럽 여러 나라를 습격하는 원정길에 올랐다. 바이킹들은 발트해 연안에서 덴마크, 네덜란드, 영국 등으로 공격과 약탈 행위를 넓혀갔고, 1011년에는 잉글랜드 남동부의 캔터베리(Canterbury)까지 점령하였다. 그 후 성 올라프는 잠시 잉글랜드의 에텔레드(Ethelred) 왕을 섬기면서 그리스도교를 접하게 되었다. 그는 군대를 이끌고 에스파냐 해안을 따라 지브롤터(Gibraltar) 해협까지 도달해 지중해로 진출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는 장차 노르웨이의 왕이 되리라는 꿈을 꾸었고, 고국으로 돌아가서 여러 작은 왕국으로 갈라진 왕국을 다시 통일하는 것을 자기의 사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다시 북쪽으로 항해하며 오늘날 프랑스 북부 오트노르망디(Haute-Normandie)의 루앙(Rouen)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겨울을 보내며 노르망디의 공작과 루앙의 대주교와 대화를 나누었고, 많은 성당과 수도원 등을 방문하면서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해 점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결국 성 올라프는 1013/4년에 루앙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노르웨이로 돌아와 여러 소왕국을 통합해 나갔고, 1016년 네스하르(Nesjar, 오늘날 노르웨이 남동쪽의 라르비크[Larvik]) 해전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 후 스스로 노르웨이 전체의 왕으로 선포했다. 그리고 영국식 행정 체계와 함께 그리스도교를 적극적으로 권장해 왕국의 통일을 이루는 기초로 삼았다. 당시 노르웨이에는 어느 정도 그리스도교가 전파되어 있었고, 이교도도 여전한 상황이었다. 성 올라프는 영국에서 선교 사제들을 초빙하고 성당을 건립하며 강력하게 세례를 권장하였다. 그리고 이교도 신전을 파괴하며 노르웨이의 그리스도교화를 이끌었다.

   하지만 그의 중앙집권적 통치와 무리한 개종 정책은 귀족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영국과 덴마크를 통치하던 크누트(Knud) 대왕은 1027년 함대를 이끌고 노르웨이에 도착해 성 올라프의 군대를 격파했다. 성 올라프는 아들과 함께 도망쳐 벨리키 노브고로드(Veliky Novgorod)에 있는 야로슬라프 1세(Yaroslav I) 키이우(Kyiv) 대공에게 갔고, 크누트 대왕은 1028년에 니다로스(Nidaros, 오늘날의 트론헤임[Trondheim])에 상륙해 자신을 노르웨이의 왕으로 선포했다. 성 올라프는 스웨덴에서 새로운 군대를 조직해 트론헤임으로 진군했으나 1030년 스티클레스타드(Stiklestad) 전투에서 패해 살해되었다. 성 올라프의 중앙집권적 통치에 반발한 소왕국의 귀족들은 크누트의 군대와 연합해 그에게 저항하였다. 그런데 크누트 대왕의 아들이 노르웨이의 왕으로 추대되고 덴마크 법률을 공포한 후 강압적인 통치로 돌아서자 성 올라프에 대한 동경과 공경이 급속히 퍼져나갔다.

   성 올라프의 유해는 1031년 여름 트론헤임의 성 클레멘스 성당으로 이장하였고, 11세기 말에 그의 무덤 위에 스칸디나비아반도 최대 규모이자 니다로스 대교구의 주교좌인 니다로스 대성당이 그의 이름으로 건립되었다. 그의 무덤에서 기적이 일어나면서 성 올라프는 곧 성인이자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기 시작했고, 니다로스 대성당은 중세 노르웨이에서 가장 유명한 성지가 되었다. 성 올라프는 노르웨이의 가장 위대한 영웅 중 한 명이며, 노르웨이를 그리스도교화 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다. 그는 1164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Alexander III)에 의해 노르웨이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7월 29일 목록에서 노르웨이에 왕이며 순교자인 성 올라프가 있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노르웨이의 트론헤임에서 순교한 성 올라프가 자기 백성의 왕으로서 영국에서 배운 그리스도교 신앙을 왕국에 전파하고 우상 숭배를 철저히 근절했지만, 결국 적의 공격으로 칼에 찔려 죽었다고 기록하였다. 성 올라프는 라틴어로는 성 올라부스(Olavus, 또는 올라보)나 성 올라우스(Olaus, 또는 올라오)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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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라프(7.29 ...] 성 올라프: 노르웨이에 신앙을 전파한 왕 주호식 2009/08/02 43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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