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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피아(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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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올림피아 (Olympias)
축일 7월 25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과부, 여부제
활동지역
활동연도 368?-408년
같은이름 올림삐아스, 올림피아데, 올림피아드, 올림피아스
성인 기본정보

   성녀 올림피아는 368년경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오늘날 튀르키예의 최대 도시인 이스탄불[Istanbul])에서 귀족 가문의 딸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콘스탄티노플의 총독인 삼촌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했다. 그녀의 삼촌은 이코니움(Iconium)의 주교인 성 암필로키오(Amphilochius, 11월 23일)의 누이인 테오도시아(Theodosia)에게 성녀 올림피아의 교육을 맡겼고, 그녀로부터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학문적 교양과 확고한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닌 처녀로 성장했다. 성녀 올림피아는 18세 때에 콘스탄티노플의 고위 관리인 네브리디우스(Nebridius)와 결혼했으나 2년도 안 되어 과부가 되고 말았다. 그녀는 재산도 많고 용모도 뛰어났기 때문에 황제를 비롯해 재혼을 권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모든 유혹과 강압에도 불구하고 금욕적인 삶을 살기도 결심했다. 한동안 황제의 명으로 원치 않는 후견인의 통제를 받았지만 결국은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고자 하는 그녀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자신의 재산에 대한 권리를 되찾은 성녀 올림피아는 본격적으로 자선활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막대한 재산을 이용해 가난한 사람을 돕고, 노예들의 몸값을 기부하고, 순례자와 성직자들을 위한 숙소를 짓고, 병자들을 위한 병원과 신학교 등을 세웠다. 그러면서도 본인을 위해서는 철저한 금욕과 가난을 실천하며 기도 생활에 전념했다. 393년경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인 넥타리우스(Nectarius)는 그녀의 나이가 규정보다 많이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부제 직분에 올렸다. 성녀 올림피아는 다른 여성 부제들과 함께 자선활동과 이교도 여성들의 세례 준비를 돕는데 헌신하며, 성녀 소피아 대성당 근처에 수녀원도 세웠다. 397년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넥타리우스가 사망한 후 총대주교가 된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Joannes Chrisostomus, 9월 13일)는 그녀의 영적 아버지가 되어 주었고, 그녀 또한 적극적으로 주교의 활동을 도왔다.

   한편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가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화려한 생활을 질타하고 신자들의 윤리적 쇄신을 통해 교회를 개혁하고자 하면서 많은 반대에 직면했다. 동시에 황실과 황후의 사치와 탐욕을 비판하자 모함을 받아 면직되고 유배형에 처해졌다. 이때 성녀 올림피아는 끝까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를 지지하며 유배 중인 주교에게 여러 도움을 제공했다. 그러면서 그녀 또한 반대파의 표적이 되어 많은 비난과 제재를 당했고, 결국 모든 것을 빼앗긴 채 강제로 쫓겨나 니코메디아(Nidomedia, 오늘날 튀르키예 북서부의 이즈미트[Izmit])로 유배를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408년 7월 25일 숨을 거두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그녀에게 17통의 편지를 보내며 각별한 애정과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 편지에 보면 성녀 올림피아는 품위 있는 여성으로서 지혜로웠으며, 반대파에게도 애덕을 베풀 만큼 관대한 성품을 지녔고, 동시에 강력한 의지의 소유자였음을 알 수 있다. 실제 한 편지에서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그녀를 이렇게 표현했다. “당신은 그 어떤 겨울 폭풍보다 더 강력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수천 명의 군인보다 더 강한 철학자의 영혼의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기보다 강력하고 또한 탑과 성벽만큼이나 안전합니다.”

   옛 “로마 순교록”은 12월 17일 목록에서 간단히 그녀의 이름을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그녀가 선종한 날이며 동방 정교회에서 축일로 기념해 오던 날인 7월 25일로 기념일을 옮기고 그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콘스탄티노플에서 하느님께 봉헌된 여인들과 함께 여생을 경건하게 보내며 가난한 이들을 돕고, 유배 중인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충실한 협력자였던 성녀 올림피아가 오늘날 튀르키예의 서북부 지방인 비티니아(Bithynia)의 니코메디아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전해주었다. 여성 부제였던 성녀 올림피아(St. Olympias the Deaconess)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을 타원형으로 둘러싼 열주 위에 세워진 140명 성인 입상의 주인공 중 한 명으로 오래전부터 공경을 받아왔다. 그녀는 올림피아데(Olympiade)로도 불린다.♣

사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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