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 니콜라우스(Nicolaus, 또는 니콜라오)는 1245년경 이탈리아 중부 안코나(Ancona) 지방의 페르모(Fermo) 근처에 있는 산탄젤로 인 폰타노(Sant’Angelo in Pontano)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전설에 따르면 그의 부모는 신심 깊은 신앙인이었으나 오랫동안 자녀가 생기지 않아 절망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천사로부터 미라(Myra)의 성 니콜라오(12월 6일)의 무덤을 순례하라는 말씀을 듣고 성인의 전구를 청하기 위해 이탈리아 남부 바리(Bari)로 순례를 떠났다. 그곳을 순례하며 간절히 기도하여 아들을 낳자 성인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아들의 이름을 니콜라오로 정했다. 이렇게 태어난 성 니콜라오는 하느님의 특별한 선물처럼 자랐다. 어려서부터 독서와 공부하기를 즐기며 성소의 꿈을 키우던 그는, 어느 날 성 아우구스티노 은수자회 신부로부터 “이 세상은 지나가는 곳입니다. 세상의 것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하느님만이 참 행복을 주십니다.”라는 설교를 듣고 크게 감동해 수도자가 될 결심을 했다. 그는 열여덟 살 무렵에 성 아우구스티노 은수자회에 입회하여 수련과 신학 공부를 하고 1269년경 사제품을 받았다. 수도회의 엄격한 규율을 충실히 지키며 살던 그는 사제품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꿈을 꿨는데, 세상을 떠난 수도회의 한 신부가 나타나 연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자신과 다른 영혼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다음 날 수도원장과 꿈 이야기를 나눈 후 연옥 영혼들을 위해 미사를 봉헌할 허락을 받았다. 그 후로도 그는 늘 연옥 영혼을 위한 미사와 기도를 잊지 않았고, 이런 이유로 이탈리아 신자들은 매년 11월 2일 위령의 날과 11월 위령 성월이 되면 연옥 영혼을 위해 그에게 특별한 전구를 청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1884년에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연옥 영혼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1275년 그는 고향에서 멀지 않은 톨렌티노로 파견되어 죽을 때까지 30년을 그곳에서 살았다. 키엔티강(Chienti R.) 기슭에 자리한 톨렌티노 지역은 그 당시 교황을 지지하는 구엘프파(Guelphs)와 황제를 지지하는 기벨린파(Ghibellines) 사이의 분쟁으로 큰 혼란에 빠져 있었다. 대다수 주민은 신앙생활보다는 당파싸움에 더 열을 올렸다. 그는 텅 빈 성당에서 기다리기보다는 거리로 나가 설교하며 정열적인 사목활동을 펼쳤다. 그는 사람들이 외면하는 빈민촌, 교도소, 보육원, 병원 등을 찾아다니며 하느님 말씀을 전하고 사랑을 베풀었다. 그가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주면 병이 치유되는 기적도 일어났다. 많은 이들이 그의 설교와 모범을 통해 냉담을 풀고 교회로 돌아왔다. 그는 인내와 겸손의 덕을 실천하며 끊임없는 기도로써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죄인들의 회개를 이끌었다. 그러면서 그의 기도를 통해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한번은 중병으로 고생하던 그에게 성모 마리아가 환시 중에 나타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빵을 구하고, 그 빵을 물에 적셔 먹으면 당신의 전구로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는 말씀을 들었다. 그는 한 여인에게 받은 빵을 물에 적셔 먹고 성모님의 전구로 건강을 되찾았다. 그 뒤로 그는 병자들을 방문하여 축복받은 빵을 나누어주며 성모 마리아의 전구를 청하라고 권유했다. 생애의 마지막 한 해 동안 중병으로 침대에 누워서 생활하던 그는 1305년 9월 10일 톨렌티노에서 평화롭게 선종하였다. 그는 임종 직전에 형제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도 성 바오로(Paulus)의 말씀을 남겼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음을 압니다. 그렇다고 내가 무죄 선고를 받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나를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1코린 4,4) 그의 무덤 위에는 곧 그의 이름으로 봉헌된 대성당(Basilica di San Nicola da Tolentino)이 세워졌고, 그의 무덤에서 수많은 기적이 일어나면서 중요한 순례지가 되었다. 그의 시성 절차는 1325년에 시작되었고, 1446년 교황 에우제니오 4세(Eugenius IV) 때 마무리되어 성인품에 올랐다. 교회 미술에서 성 니콜라오는 성 아우구스티노 은수자회의 검은 수도복을 입고, 머리 위에는 별이 그리고 가슴에는 태양이 그려진 모습으로 그려지며, 백합이나 책 또는 십자가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도 묘사된다. 때로는 자선과 기적을 상징하는 돈이나 ‘성 니콜라오의 빵’으로 불리는 빵 바구니를 들고 있거나 구운 새가 올려진 접시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도 등장한다. 구운 새는 그가 중병에 걸렸을 때 고행을 위해 육류를 먹지 않던 그에게 수도원장이 구운 자고새를 먹도록 명하자 순종하여 한 입 베어 물자 또는 기도하자 그 새가 살아나서 날아갔다는 기적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찬란한 별빛은 그를 따라다니며 밝게 비춰주었다는 일화에서 나온 묘사이다. 옛 “로마 순교록”은 9월 10일 목록에서 안코나의 톨렌티노에서 성 아우구스티노 은수자회의 사제인 성 니콜라오가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이탈리아 마르케(Marche)의 톨렌티노에서 성 아우구스티노 은수자회의 사제인 성 니콜라오가 엄격한 금욕 생활과 성실한 기도 생활에 헌신했는데, 자신에게는 엄격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비로웠으며, 종종 다른 사람들의 참회와 속죄를 자신에게 스스로 부과했다고 기록하였다. 성 니콜라오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을 타원형으로 둘러싼 열주 위에 세워진 140명의 성인 입상의 주인공 중 한 명이다.♣
|
| 번호 | 성인명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수 | 추천수 |
|---|---|---|---|---|---|---|
| 2 | [니콜라오(9.1 ...] | 금주의 성인: 톨렌티노의 성 니콜라오 | 주호식 | 2025/09/08 | 96 | 0 |
| 1 | [니콜라오(9.1 ...] | 톨렌티노의 성 니콜라오 | 주호식 | 2015/09/06 | 411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