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네스(Joannes, 또는 요한)은 오늘날 영국 잉글랜드(England)의 이스트 라이딩 오브 요크셔(East Riding of Yorkshire)에 속한 하르팜(Harpham)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성 하드리아노(Hadrianus, 1월 9일)의 문하생으로 캔터베리(Canterbury)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그 후 그의 친구인 성 베다(Beda, 5월 25일)의 기록에 따르면, 한동안 노스요크셔(North Yorkshire)의 휘트비(Whitby) 수도원에 들어가 생활했다. 그는 성경을 해석하는데 탁월한 능력과 학식을 지녔고, 설교가로서도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687년에 그는 캔터베리의 대주교인 성 테오도로(Theodorus, 9월 19일)에 의해 헥삼(Hexham) 교구의 주교로 축성되었고, 705년에는 성 보사(Bosa, 3월 9일)를 계승하여 요크(York)의 대주교가 되었다. 그는 주교로서 사목하면서도 교사로서 학생들을 교육하는 데 힘썼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며 고적한 생활을 즐겼다고 한다. 그러나 성 요한 주교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바는 별로 없다. 그는 718년경 은퇴하여 자신이 설립한 베벌리(Beverley) 수도원에서 지내다가 721년 5월 7일 선종하였다. 그의 무덤에서 많은 치유 기적이 일어나면서 수 세기 동안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순례지 중 하나가 되었다. 또한 많은 제자와 순례자들에 의해 베벌리 마을이 큰 도시로 번창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1037년 교황 베네딕토 9세(Benedictus IX)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요크의 대주교였던 그는 베벌리 수도원의 명성에 힘입어 주로 ‘베벌리의 성 요한’으로 불리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5월 7일 목록에서 헥삼의 주교이자 요크의 주교였던 성 요한의 사목적 헌신과 자신이 설립한 수도원에서 수도자로서 삶을 마감한 그를 베벌리에서 기념하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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