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니콜라우스 피크(Nicolaus Pieck, 또는 니콜라오 피크)는 1534년 네덜란드의 고르쿰에서 태어났다. 그는 스헤르토헨보스(s-Hertogenbosch)의 대학에서 공부한 후 고향 마을에 있는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였다. 1558년 사제품을 받고 주어진 사도직에 최선을 다하던 그는 고르쿰 수도원의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칼뱅파에 대항하여 설교하며 그들의 개종을 위해 다른 4명의 사제와 함께 힘을 모아 활동했다. 1572년 칼뱅파 군인들이 봉기를 일으켰을 때 고르쿰 수도원에 있던 수도자들 모두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고 심한 고문을 받았다. 그들은 성체 교리와 교황의 수위권을 거부하면 살려준다는 회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가톨릭교회의 교리와 전통을 고수했다. 그 결과 성 니콜라오 피크와 다른 18명의 사제와 수도자가 덴 브리엘(Den Briel)로 이송되어 이미 폐허가 된 루겐(Ruggen) 수도원에서 교수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성 니콜라우스 피크와 18명의 동료 순교자들은 1675년 교황 클레멘스 10세(Clemens X)에 의해 시복되었고, 1867년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고르쿰의 순교자’로 성인품에 올랐다.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모두 7월 9일 목록에서 브리엘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한 19명의 순교자에 대해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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