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 지방의 구비오에서 귀족의 자녀로 태어난 성 우발두스 발다시니(Ubaldus Baldassini, 또는 우발도 발다시니)는, 게르만계 혈통을 이어받은 아버지를 어려서 여의고 고아가 되었다. 그 후 그는 고향인 구비오의 주교좌성당 참사 수도회에서 교육을 받고, 후에 그 수도회에 입회했다. 그는 1114년에 사제품을 받고, 1117년경 수도원 원장이 되었다. 그때 그는 수도자들이 철저하게 공동체 생활을 하는 수도회가 설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을 방문해 석 달 동안 함께 생활한 후 그곳의 생활 규칙을 자신의 수도원에 도입해 적용시켰다. 성 우발두스가 하느님을 섬기는 철저한 생활을 통해 점점 명성을 얻던 중 주교좌성당에 화재가 발생했다. 1125년 주교좌성당의 복구 활동을 벌이던 그는 공석 중인 교구장을 임명해 주도록 교황 호노리우스 2세(Honorius II)에게 사절을 파견했다. 그러나 교구 신자들의 요청에 따라 성 우발두스가 주교 후보로 천거되었고, 그로 인해 1129년 주교품을 받았다. 그 후 성 우발두스는 약 31년 동안 인내심과 자비심 그리고 용기를 갖고 교구장직을 수행하여 교구 신자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았다. 그는 말년에 약 2년 동안 고통스러운 투병 생활을 한 후 1160년 구비오에서 선종했다. 성 우발두스의 유해는 선종 후 구비오 주교좌성당에 안치되었는데, 시신이 부패하지 않고 그대로 부존되었다고 한다. 후에 그의 유해는 구비오 시를 굽어보는 콜레 인지노(Colle Ingino) 언덕 정상에 지은 작은 경당으로 이장되었고, 많은 기적이 일어나면서 그의 유해가 안치된 경당은 오늘날까지 중요한 순례지가 되었다. 그는 1192년 교황 코일레스티누스 3세(Coelestinus 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고, 마귀 들린 사람, 편두통과 신경통 환자, 앓는 어린이의 수호성인으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교회미술에서 그는 주로 천사들이 주교 지팡이를 들고 있는 가운데 축복을 내리는 주교 또는 마귀들을 물리치며 축복을 하는 주교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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