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목록

구분 성인명     축일 신분 지역명 검색
카테리 테카크위타(4.17)

카테리 테카크위타(4.17)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인쇄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카테리 테카크위타 (Kateri Tekakwitha)
축일 4월 17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동정녀
활동지역 캐나다(Canada)
활동연도 1656-1680년
같은이름 가타리나, 까따리나, 까떼리, 데카위타, 데카퀴타, 데카키타, 카데리, 카타리나, 캐서린
성인 기본정보

   성녀 카타리나 데카크위타(Catharina Tekakwitha, 또는 가타리나/카테리[Kateri] 데카크위타)는 1656년 오늘날 캐나다와의 접경 지역인 미국 뉴욕주의 오리스빌(Auriesville) 근처에 있었던 모호크족(Mohawks) 마을인 오세르네논(Ossernenon)에서 모호크족의 추장인 아버지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알곤킨족(Algonquin)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데카크위타라는 이름을 얻었다. ‘데카크위타’는 모호크족 말로 ‘사물과 부딪히는 여자’라는 뜻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당시 무역 중심지였던 뉴프랑스(Nouvelle-France)의 세 개의 강(Three Rivers) 지역에서 프랑스 정착민과 함께 자라며 세례를 받았다. 그러던 중 1653년경 모호크족에게 납치되어 그들의 추장 한 명과 결혼하여 데카크위타와 다른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데카크위타만 살아남았다. 성녀 데카크위타가 4살이던 1660년 천연두 전염병으로 인해 그녀의 부모와 남동생이 모두 사망했고, 그녀의 얼굴에도 영구적인 흉터가 생기고 시력도 손상되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성녀 데카크위타는 이모와 거북이 부족(Turtle Clan)의 추장이 된 삼촌에게 입양되어 성장했다. 1667년에 그녀가 속한 모호크족이 모호크강 건너편으로 이주해 정착한 코그나와가(Caughnawaga) 인디언 마을(오늘날 미국 뉴욕주의 폰다[Fonda])에 세 명의 예수회 선교사가 방문해 삼촌의 손님으로 3일간 머무른 적이 있었다. 인디언들이 ‘검은 옷’을 입은 선교사로 부르는 예수회원을 통해 11살의 성녀 데카크위타는 처음으로 그리스도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녀는 그때부터 비록 세례는 받지 않았으나 예수회 선교사들의 가르침에 따라 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리스도교를 반대하는 삼촌과 부족의 반대도 절대 가볍지 않았다. 전통에 따라 그녀의 결혼 계획을 세우고 일찍부터 결혼을 강요했지만, 그녀는 큰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동정녀로 살기 위해 끝까지 저항했다. 그녀의 요청을 받은 예수회 선교사 쟈크 드 랑버빌(Jacques de Lamberville) 신부가 성녀 데카크위타에게 교리를 가르쳐 주었고, 그녀가 20살이 된 1676년 4월 5일 부활절에 가타리나라는 이름으로 세례도 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모호크족 언어로 성녀 카테리 데카크위타로 불리게 되었다.

   그런데 성녀 카테리 데카크위타의 개종과 세례를 반대하는 친척과 부족의 탄압과 학대가 점점 심해졌다. 상황이 악화하여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자 예수회 선교사는 그녀가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퀘벡주(Quebec州)의 몬트리올(Montreal) 근처 세인트로렌스강(Saint Lawrence R.)에 면해 있는 그리스도교 마을인 카나와케(kahnawake)로 피신하도록 조언했다. 그녀는 320km가 넘는 숲을 통과해 1677년 10월 그 마을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다른 인디언 원주민들을 처음으로 많이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기도와 금욕 생활을 실천할 수 있었다. 그녀는 3년 동안 예수회원의 영적 지도와 다른 여성의 지도를 받으며 기도와 참회, 자선과 금욕의 삶을 실천하면서 노인과 병자들을 사랑으로 돌보았다. 1677년 12월 25일 성탄절에 첫영성체를 하고, 1679년 3월 25일 성모 영보 축일에 예수회 신부 앞에서 개인적으로 동정서원을 할 기회를 얻었다. 그래서 그녀를 ‘최초의 이로쿼이족 동정녀’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녀 카테리 데카크위타는 비록 24살의 젊은 나이였지만 건강이 점점 악화하여 1680년 4월 17일 성주간 수요일 오후 3시에 병자성사를 받고 노자성체를 모신 후 선종하였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예수님, 성모님, 사랑합니다.”였다고 한다. 그녀의 죽음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인디언들의 신앙적 열정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의 무덤은 그리스도인 인디언뿐만 아니라 프랑스 정착지에 사는 이들의 주요 순례지가 되었고, 많은 기적이 일어나는 장소로 알려졌다. 성녀 카테리 데카크위타는 ‘모호크족의 백합’(Lily of the Mohawks)으로 불리며, 1980년 6월 22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아메리카 원주민 가운데 최초로 시복되었다. 그리고 2011년 12월 19일 교황 베네딕토 16세(Benedictus XVI)가 기적을 확인하는 시성성의 교령을 승인한 후 그녀에 대한 시성 절차가 진행되어, 2012년 10월 21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4월 17일 목록에서 당시 복녀였던 성녀 카테리 데카크위타 동정녀가 캐나다 원주민 인디언 가운데에서 태어나 아직 그리스도인이 되기도 전에 하느님께 자신의 동정을 바치고 많은 위협과 무시를 당하는 박해에도 불구하고 부활절에 세례를 받고 스스로 신앙을 지켰다고 기록하였다. 그녀의 축일은 보편교회와 캐나다에서는 선종한 날인 4월 17일에 기념하는데, 미국에서는 종종 주님 부활 대축일과 겹치는 것을 피하고자 7월 14일로 이동해 기념하고 있다. 성녀 카테리 데카크위타는 캐나다와 북미 아메리카 원주민의 수호성인이며, 신앙 때문에 동족으로부터 박해받는 모든 이들의 수호자로 공경을 받고 있다.♣

사진/그림

자료실

성인 게시판
번호 성인명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수 추천수
3 [카테리 테카크위 ...] 북미 원주민 테카크위타 비롯 7위 시성식 주호식 2012/10/27 461 0
2 [카테리 테카크위 ...]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시성식 강론(영문)|2| 주호식 2012/10/23 778 1
1 [카테리 테카크위 ...] 시성을 앞둔 330년 전 인디언 여성 카테리 데카퀴타 주호식 2011/12/22 572 1
검색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