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테오도루스(Theodorus, 또는 테오도로)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별로 없지만, 그에 대한 가장 오래된 증언은 4세기 후반 니사(Nyssa)의 성 그레고리오(Gregorius, 1월 10일)의 강론에서 찾을 수 있다. 그의 증언과 “로마 순교록”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신병’ 또는 ‘신병 모집관’이란 뜻을 지닌 티로(Tiro)라는 별칭과 함께 성 테오도도 티로(Theodorus Tiro)로 불린 것으로 보아 로마 제국의 군인이었음이 확실하다. 그는 막시미아누스 황제 시대에 흑해 연안 로마 제국의 속주인 폰투스(Pontus)의 아마시아(오늘날 튀르키예 중북부의 아마시아[Amasya])에서 군인으로 복무하던 중 이교도의 신을 공경하는 예식에 참석해 제물을 바치라는 강요를 받았다. 그는 당당히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고 거부했으나 재판관은 다시 한번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그러자 그날 밤 그는 ‘신들의 어머니’ 신전으로 가서 그곳을 아예 불태워버렸다. 결국 성 테오도로는 체포되어 심한 채찍질을 당하고 감옥에 갇혔다. 감옥에서 그는 용기를 갖고 행동하라며 함께 하시겠다는 주님의 발현을 체험하고 큰 위로를 받았다. 흰 예복을 입은 이들이 자물쇠로 굳게 잠긴 감옥 안에서 그와 함께 시편을 노래하는 것을 보고 놀란 간수들은 도망치고 말았다. 그는 재판관 앞으로 다시 끌려 나와 제물을 바치도록 강요받았으나 이를 거부해 극심한 고문을 당했다. 박해자는 그의 팔다리를 매달고 쇠갈고리로 그의 장기가 다 드러날 정도로 옆구리를 찌르며 고통을 준 후 산 채로 불 속에 던지는 화형에 처했다. 중세에 성 테오도로 티로는 말을 타고 용을 죽이는 전사의 모습으로 많이 표현되었고, 일찍부터 베네치아(Venezia)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았었다(9세기 이후로는 성 마르코 복음사가). 9세기에 같은 이름의 성인이 등장했는데, 그는 보통 성 테오도루스 스트라텔라테스(Theodurus ‘Stratelates’, 또는 테오도로 ‘장군’) 또는 헤라클레아(Heraclea)의 성 테오도로(2월 7일)로 불렸다. 그들은 종종 동일 인물로 혼동되었는데, 아마도 성 테오도로 티로의 삶과 순교에 관한 수많은 전설이 생기면서 두 명의 다른 성인 이야기로 발전한 듯하다. 옛 “로마 순교록은 11월 9일 목록에서 아마시아의 성 테오도로 티로에 대해, 그리고 2월 7일 목록에서 리키니우스(Licinius) 황제 치하의 장군이었던 헤라클레아의 성 테오도로 스트라텔라테스에 대해 별도로 기록하였다. 오늘날 가톨릭교회에서는 군인 순교자인 두 명의 성 테오도로를 하나의 인물, 즉 동일 인물로 보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성 테오도로 티로에 대해서만 언급했는데, 기념일도 11월 9일이 아닌 순교한 날로 알려진 2월 17일로 옮겨 기록하였다. 이날은 동방 정교회에서 그의 축일로 기념하던 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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