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론조 토마스 가르시아와 루치아 마르티네스 카스텔라노스의 아들로 태어난 빌라노바의 성 토마스는 에스파냐 카스티야(Castilla)의 푸엔텔라나(Fuentellana)에서 나서 자랐고, 10세 때에 알칼라(Alcala)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는 여기서 문학 석사와 신학교수 자격증을 받고, 불과 26세의 나이에 그 대학교의 교수로 발탁되었다. 1516년 그는 성 아우구스티노회에 입회하여 1518년에 사제 서품을 받고 여러 수도원의 원장을 역임하다가 안달루시아(Andalusia)와 카스티야의 관구장이 되었다. 이때 그는 성 아우구스티노회 최초의 선교단을 멕시코로 파견하였다. 그 후 그는 카를로스 5세의 전속사제로 임명되었으나 그라나다(Granada)의 주교직은 거부하던 중 1544년에 발렌시아(Valencia)의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이 교구는 90년 동안이나 주교좌가 공석이었기 때문에 그는 즉시 개혁에 착수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으로 일약 유명한 주교로 인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무어인들의 개종을 위해서도 정열을 쏟았다. 또한 그는 사제들로 하여금 개종자들의 어린이들을 교육할 수 있도록 조처하였다. 비록 트렌토(Trento) 공의회에는 참석하지 못하였으나 에스파냐 교회 내의 개혁 운동에는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1658년 교황 알렉산데르 7세(Alexander V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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