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잉글랜드(England)의 헤리퍼드의 주교이며 토마스 켄틀루프(Thomas Cantelupe)라고도 불리는 성 토마스는 노르만 귀족 가문의 후손으로서 헨리 3세의 무관인 바론 윌리엄 켄틀루프의 아들이다. 그는 잉글랜드 버킹엄셔(Buckinghamshire)에서 태어나 삼촌인 우스터(Worcester)의 월터(Walter) 주교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 후 토마스는 부친과 함께 1245년의 리옹(Lyon) 공의회에 참석했는데, 아마도 그 이후에 사제로 서품된 듯하다. 그 후 그는 오를레앙(Orleans)과 파리(Paris)에서 법률을 공부하였고, 옥스퍼드(Oxford)에서는 교회법을 교수하였으며 1262년에 수상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정의와 융화를 바탕으로 직무를 수행하였으나 시몬 드 몽포르(Simon de Montfort)의 죽음을 계기로 파리로 은퇴하였다가 1274년에 헤리퍼드의 주교로 착좌하였다. 그는 교구의 개혁을 조심스럽게 단행하였고, 속권에 의해 유린된 교회의 권리를 회복시켰으며 참으로 지혜롭게 교구를 지도하였다. 그의 만년은 주로 캔터베리(Canterbury)의 대주교인 토마스 존 페크햄(Thomas John Peckham)과의 교회법적 논쟁으로 보냈는데, 1282년에는 그 대주교에 의하여 파문 처분을 당하였다. 토마스는 이 사건을 교황에게 상소하기 위하여 로마(Roma)로 가던 중 몬테 피아스코네(Monte Fiascone)에서 서거하였다. 그는 1320년에 교황 요한 22세(Joannes XXII)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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