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5년경 프랑스의 수아송(Soissons)에서 태어난 성 파스카시우스 라드베르투스(또는 파스카시오 라드베르토)는 갓난아이 때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베네딕토회 수녀원에서 양육되었다. 청년이 된 후 아미앵(Amiens) 근처에 있는 코르비의 베네딕토회에 입회하였다. 당시 아빠스는 성 아달하르두스(Adalhardus, 1월 2일)였는데, 그는 성 파스카시우스의 개인적 스승이었으며, 후에 성 파스카시우스는 그의 전기를 집필하기도 하였다. 성서와 교부들의 저술에 대하여 깊이 있게 공부한 그는 부제 서품을 받았다. 822년 그는 독일 동부의 베스트팔렌(Westfalen) 지역에 새로운 코르비 수도원을 세우라는 명을 받고 파견되었다. 그는 신설된 수도원에서 수련자 담당과 수도원 학교의 교장을 맡았다. 843년경 그는 코르비 수도원의 아빠스(수도원장)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아빠스가 된 후에도 부제로 머물고 사제 서품을 받지 않았다. 그 이유는 자신이 신부가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겸손함 때문이었다. 7년간의 아빠스직을 마친 후 그는 생리키에(Saint-Riquier) 수도원에 머물며 학문과 저술 활동에만 전념하였다. 그가 남긴 여러 저술 중에서 성체성사에 대한 깊은 연구를 담은 “주님의 몸과 피”(De corpore et sanguine Domini)가 가장 유명하다. 그 외에도 그는 몇 권의 성서 주석서 그리고 스승인 성 아달하르두스와 그의 후임자인 왈라(Wala)의 전기도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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