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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펠라기아(또는 펠라지아)는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Joannes Chrisostomus, 9월 13일)가 강론에서 언급한 바에 따르면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오늘날 튀르키예 남부의 안타키아[Antakya])에 살던 15살의 그리스도인 소녀였다. 군인들이 그녀를 체포하기 위해 집으로 왔을 때, 그녀는 신앙을 부인하거나 배교할 뜻이 없었기 때문에 사형선고를 받거나 자신처럼 젊은 여성은 사창가의 노예로 끌려갈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모든 고문을 견뎌내고 용감하게 순교할 각오가 되어 있었으나 사창가로 끌려가 정결을 잃게 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군인들에게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오겠다고 한 후 지붕으로 올라가 강물에 몸을 던졌다. 성녀 펠라지아는 사형 집행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강물로 뛰어들었음에도 안티오키아에서 순결의 상징이자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았다. 이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신랑이신 그리스도께 정결한 몸을 봉헌하고자 선택한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밀라노(Milano)의 성 암브로시오(Ambrosius, 12월 7일)는 그의 저서 “동정녀”(De Virginibus)과 “심플리키아누스에게 보낸 편지”(Ad Simplicianum)에서 성녀 펠라지아에 대해 언급했고,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그녀에 대한 두 번의 강론에서 성령의 영에 의한 그녀의 용기 있는 행동을 칭송하였다. 그녀의 순교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년 재위)가 통치하던 302년경에 일어났다. 안티오키아의 동정 순교자인 성녀 펠라지아는 분명히 실존 인물이지만, 종종 전설적인 인물인 성녀 펠라지아 통회자와 혼동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6월 9일 목록에서 성 암브로시오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가 안티오키아의 동정 순교자인 성녀 펠라지아를 기리는 설교를 했다고 전해주었다. 그리고 10월 8일 목록에서 예루살렘(Jerusalem)에 ‘통회자’라는 별명을 가진 성녀 펠라지아가 있었다고 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시리아 안티오키아의 동정 순교자인 성녀 펠라지아를 4세기 초부터 안티오키아에서 기념하던 10월 8일로 옮겨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가 그녀의 덕을 크게 칭송했다고 기록하였다. 전통적으로 통회자 성녀 펠라지아 외에도 같은 이름을 지닌 성녀가 여럿 언급되었으나 개정 “로마 순교록”은 안티오키아의 동정 순교자인 성녀 펠라지아만 유일하게 10월 8일 목록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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