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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살레시오(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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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Francis de Sales)
축일 1월 24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설립자, 교회학자
활동지역 제네바(Geneva)
활동연도 1567-1622년
같은이름 방지거, 살레시우스, 프란체스꼬, 프란체스꾸스, 프란체스코, 프란체스쿠스, 프란치스꼬, 프란치스꾸스, 프란치스코 드 살, 프란치스쿠스, 프랑수아 드 살, 프랜시스
성인 기본정보

   성 프란치스쿠스 살레시우스(Franciscus Salesius, 또는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1567년 8월 21일 이탈리아의 독립 공국에 속한 오늘날 프랑스 남동쪽 사부아(Savoie)의 토랑스(Thorens)에 있는 가문 소유의 성(城)인 샤토 드 살(Chateau de Sales)에서 태어났다. 여섯 형제 중 맏이로 태어난 그는 사보이아(Savoia) 공국의 열심한 가톨릭 귀족인 부모의 영향을 받아 신앙심 깊은 아이로 성장했다. 행정관이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에 의해 7살에 라 로슈(La Roche)의 기숙학교에 입학했다가 9살 때 카푸친회에서 운영하는 안시(Anneey)의 학교로 진학했다. 1582년부터 그는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클레르몽(Clermont) 대학과 파리(Paris)의 소르본(Sorbonne) 대학교에서 수사학과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신학 과정을 배웠다. 그는 신학자들과 구원 예정설을 주제로 토론하면서 당대의 엄격하고 비관주의적 분위기에 빠져 극심한 좌절과 유혹을 경험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소르본 대학교는 프로테스탄트와 초기 얀센주의(Jansenismus)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19살 때 그는 생테티엔데그레(Saint-Etienne-des-Gres)에 있는 기적의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던 중 유혹에서 벗어나며 정결을 지키고 성모님께 자신을 봉헌하겠다고 서약했다.

   1588년부터 그는 이탈리아의 파도바(Padova) 대학교에서 교회법과 일반 시민법을 전공하여 1592년 불과 24살의 젊은 나이에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당시 그의 총명함으로 인해 사보이아 공국의 샹베리(Chambery) 상원으로부터 법률가 자격은 물론 의원 자리까지 제안받았다. 그의 아버지 또한 그가 가문을 빛낼 것으로 기대하며 부유한 귀족 가문과 결혼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에 로마로 성지순례를 떠났는데, 로레토(Loreto) 성모 성지에서 탈혼과 신비 체험을 하면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게 되었다. 그는 가족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세속의 일과 전망을 모두 포기하고 성직자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어렵게 제네바 성당의 사제로 있던 사촌 형의 도움으로 1593년 12월 18일 극적으로 안시에서 사제품을 받을 수 있었다.

   그 후 그는 1594년에 험한 산간 지방인 샤블레(Chablais)의 선교사를 자원하여 5년 동안 활동했는데, 그곳은 칼뱅주의자들이 약 50년간 가톨릭 신앙을 금지하고 프로테스탄트를 강요하던 지역으로 사보이아 공국이 되찾은 지 얼마 안 된 선교 지역이었다. 그는 칼뱅 사상을 추종하는 신자들의 냉대와 박해 속에서도 선교를 포기하지 않았다. 극단적인 암살자와 칼뱅 교도들의 끊임없는 공격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곳 주민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도록 끊임없이 외치고 또 일일이 편지를 써서 대문 밑으로 밀어 넣으며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전했다. 그의 부단한 노력과 1598년 프랑스와 사보이아 공국 간의 평화협정에 힘입어 샤블레 지방에서 칼뱅 사상에 빠졌던 많은 이들이 가톨릭교회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1599년 5월 22일 그는 스위스 제네바 교구장의 강력한 권유로 인해 부주교로서 주교품을 받았다. 그는 교구장을 대신해 교황청 정기방문(Ad limina)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파리로 가서 프랑스 국왕인 앙리 4세(Henri IV)의 요청으로 궁에서 사순시기 설교를 했다. 앙리 4세는 그를 프랑스에 계속 머물게 하고 싶었지만 1602년 제네바 교구장이 선종하자 부주교였던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가 전임자를 계승해 교구장 주교로 착좌하였다.

   교구장이 된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가장 먼저 젊은이와 노인을 포함한 모든 신자를 대상으로 체계적으로 교리를 가르치는 일을 시도했다. 그리고 교구 사제단을 위한 세심한 규칙을 제정하고, 교구 내의 모든 본당을 방문하며 수도 공동체를 개혁하는 데도 힘썼다. 그의 선함과 인내, 온유함은 곧 널리 알려졌고, 겸손과 소박한 생활을 통해 가난한 이들과 나눔을 실천하는 그의 삶에 많은 이들이 감동하였다. 또한 뛰어난 고해신부이자 설교가였던 그는 해박한 신학 지식과 이해심으로 만인의 심금을 울렸다. 그는 곧 당시 종교개혁자에 대항하는 가톨릭교회의 지도자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었는데, 그의 지혜와 지식을 따를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학교를 세우고 예비 신자들을 가르치며, 영적 지도뿐 아니라 많은 저서를 집필하여 자신의 교구를 훌륭하게 이끌었다.

   그런 그의 열정은 교구 밖으로도 뻗어나가 다른 여러 곳에서 사순과 대림 시기 강연을 초대받기도 했다. 1604년 그는 부르고뉴(Bourgogne)의 수도인 디종(Dijon)에서 유명한 강연을 했는데, 그때 네 명의 어린 자녀를 둔 젊은 남작 미망인인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Joanna Francisca de Chantal, 8월 12일)을 처음 만나 그녀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는 교회 역사상 가장 유명한 영적 우정으로 자라났다. 하느님께 온전히 자신을 봉헌하고 싶었던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은 그 방법을 몰라 고민하다가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와 오랜 의논 끝에, 성소를 느끼지만 기존 수도회의 육체적 엄격함을 견디기 힘든 젊은 여성들이나 미망인들을 위한 수도회를 1607년에 설립하였다. 이 수도회의 이름은 여러 번 바뀌다가 마침내 ‘성모 마리아 방문 수도회’(Ordo Visitationis Beatissimae Mariae Virginis)로 정해졌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안시(Annecy)에 새로운 수도회를 설립하길 원했었는데,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과 함께 새 수도원을 세우고 1610년 6월 6일 삼위일체 대축일에 축성식을 봉헌하였다.

   가톨릭교회가 큰 위기를 맞았던 종교개혁 시기, 프로테스탄트의 세력과 반대가 가장 심했던 제네바의 교구장으로서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특유의 열정과 온유함으로 7만여 명의 개신교 신자들을 가톨릭교회로 돌아오도록 인도하였다. 그는 또한 수많은 서간과 저서를 남겼는데,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신심 생활 입문”(Introduction a la vie devote, 1609년)과 “신애론”(神愛論, Traite de l’amour de Dieu, 1616년)을 들 수 있다. 특히 “신심 생활 입문”은 평신도를 위해 쓴 영성 서적으로, 이로 인해 그는 평신도 영성에 관해 글을 쓰고 가르친 최초의 영성 작가가 되었다. 그 이전까지 영성은 주로 수도자들이 추구하는 완덕의 삶으로 제한하는 경향이 컸는데, 세상에서 자기 직업을 갖고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평신도도 세속에서 경건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의 놀라운 가르침이었다.

   1622년에 그는 사보이아 왕실을 안내해 프랑스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리옹(Lyon)에 있는 성모 마리아 방문 수도회의 작은 방에 머물렀는데, 12월 27일 뇌일혈이 발생해 급하게 병자성사와 고해성사를 받았다. 그는 계속해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예수님, 내 하느님, 나의 전부여!”라고 기도했고, 다음날인 12월 28일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수많은 군중이 그의 빈소를 찾아 기도했고, 그의 유해를 리옹에 모시길 강력히 원했다. 하지만 프랑스의 왕 루이 13세(Louis XIII)는 이듬해에 어렵게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유해를 그가 원했던 안시로 옮겨 모시도록 했다. 결국 그의 유해는 1623년 1월 장엄한 행렬을 통해 안시로 옮겨진 후 1월 24일 성모 마리아 방문 수도회 성당에 안치되었다. 그리고 1641년 12월 13일 물랭 수도원에서 선종한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의 유해도 나중에 그의 무덤 옆으로 모셨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1662년 1월 8일 교황 알렉산데르 7세(Alexander VII)에 의해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시복되었는데, 이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한 첫 번째 공식적인 시복식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그는 1665년 11월 19일 같은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고, 1877년 11월 16일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교회 학자로 선포되었다. 1923년에 교황 비오 11세(Pius XI)는 그를 저술가와 언론인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그는 ‘현대 영성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고, 19세기에 그를 수호성인으로 하여 여러 단체와 수도회가 설립되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수도회로는 성 요한 보스코(Joannes Bosco, 1월 31일)가 토리노(Torino)에서 설립한 살레시오회(Society of St. Francis de Sales)가 있다. 그는 프란치스코 드 살(Franciscus de Sales, 또는 프란체스코 드 살) 또는 프랑수아 드 살(Francois de Sales)로도 불린다.

   옛 “로마 순교록”은 12월 28일 목록에서 제네바의 주교이자 교황 알렉산데르 7세가 이단자의 개종에 가장 열정적인 성인으로 꼽은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가 프랑스 리옹에서 선종했으며, 같은 교황의 명으로 그의 유해가 리옹에서 안시로 이장된 1월 29일에 축일을 기념하게 되었다고 전해주었다. 또한 교황 비오 9세가 그를 교회 학자로 선포했음도 언급하였다. 그리고 1월 29일 목록에서 리옹에서 그를 기념한다고 언급하였다. 1969년 로마 보편 전례력 개정 이후 그가 선종한 12월 28일을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로 기념하면서, 그의 유해가 안시에 안치된 1월 24일을 축일로 지내게 되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역시 1월 24일 목록에서 제네바의 주교이자 교회 학자인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를 기념한다고 하며, 그가 영혼의 참된 목자로서 교회에서 분리된 많은 형제를 가톨릭교회와의 친교로 다시 이끌었다고 했다. 또한 많은 저서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느님에 대한 신심과 사랑을 가르쳤으며,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과 함께 성모 마리아 방문 수도회를 설립해 겸손한 삶을 살다가 12월 28일 리옹에서 선종해 1월 24일 안시에 묻혔다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12월 28일 목록에서 그가 리옹에서 선종한 날임을 알리며 1월 24일에 축일을 기념한다고 언급하였다.♣

참고자료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 학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470-473쪽.
  • 르네 라가야 저, 신철균 역, 아무것도 요구하지 말고 아무것도 거절하지 말라 -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삶, 서울(도서출판 돈보스코미디어), 2022년.
  • 마리 크리스토프 편, 이혜정 역, 더 큰 부드러움으로 -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와 함께하는 하루 한 생각, 서울(생활성서), 2011년.
  • 양승국 저, 성모님을 사랑한 성인들, 서울(생활성서), 2018년, 85-91쪽.
  • 왈터 닉 저, 정은순 역, 위대한 성인들, 왜관(분도출판사), 1991년.
  • 최익철 저, 우표로 보는 교회를 빛낸 분들 -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서울(으뜸사랑), 2014년, 193-197쪽.
  • 페르디난트 홀뵉 저, 이숙희 역, 성체의 삶을 위한 성체와 성인들 -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 서울(성요셉출판사), 2000년, 283-295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2권 -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6년, 9059-9062쪽.
  •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성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서울(성바오로), 2002년, 34-36쪽.
  • M. 앙리 코위아니에, 안응렬 역,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우정의 성인, 서울(돈보스코미디어),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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