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로코피우스(또는 프로코피오)의 생애에 대해 확실히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970년경 체코 서부 보헤미아(Bohemia)의 코우르짐(Kourzim) 인근에서 그리스도교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프라하(Prague)에서 공부한 후 그곳에서 동방교회의 사제가 되었다. 그리고 결혼하여 아들을 하나 두었다. 하지만 은수자의 삶을 간절히 원했던 그는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아내와 아들을 떠나 은수자의 삶에 헌신한 후 수도원을 설립하고 슬라브어로 그리스 전례를 통해 하느님을 찬미했다고 한다. 그는 처음 은수자의 삶을 시작할 때 프라하의 사자바 계곡에 있는 성 바실리오(Basilius) 수도원에 들어가서 지냈는데, 그의 덕이 너무나 출중해서 이미 살아있는 성인으로 공경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보헤미아의 한 백작의 후원을 받아 사자바에 성 베네딕토(Benedictus)와 성 대 바실리오의 수도 규칙을 따르는 동방 전례의 수도원을 설립하고 초대 원장으로서 삶을 마칠 때까지 20년 동안 헌신하였다. 성 프로코피오는 1053년 3월 25일 자기가 설립한 수도원에서 선종하였다. 그는 일찍이 체코슬로바키아(Czechoslovakia,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 두 개의 나라로 갈라졌음)의 수호성인으로 큰 공경을 받아 왔고, 1204년에 교황 인노첸시오 3세(Innocentius 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는 로마에서 시성된 최초의 보헤미아 출신 성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유해는 1588년 프라하성(城)의 모든 성인 성당으로 옮겨 안치되었다. 전설적 이야기에 따르면 그가 사자바 계곡에서 고행 생활을 할 때, 그 주변에 살던 농부들은 악마가 쟁기에 매달린 채 성 프로코피오와 함께 땅을 갈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신앙으로 인도되었다고 한다. 가톨릭교회는 한동안 그의 축일을 7월 14일(지역에 따라서는 7월 4일)에 기념했으나 개정 “로마 순교록”은 선종한 날인 3월 25일에 그를 기념하도록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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