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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멘시오(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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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프루멘시오 (Frumentius)
축일 7월 20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활동지역 에티오피아(Ethiopia)
활동연도 +4세기
같은이름 프루멘시우스, 프루멘씨오, 프루멘씨우스, 프루멘티오, 프루멘티우스
성인 기본정보

   성 프루멘티우스(또는 프루멘시오)와 아이데시우스(Aedesius)는 형제지간으로 4세기 초에 페니키아(Phoenicia, 오늘날 시리아, 레바논 해안지대의 고대 지명)의 가장 큰 항구도시인 티레(Tyre)에서 태어났다. 동시대 역사가인 티라니우스 루피누스(Tyrannius Rufinus)의 “교회사”에 따르면, 성 프루멘시오는 그리스 문화권에서 살던 그리스도인으로 동생인 아이데시우스와 함께 티레에서 철학자인 메로피우스(Meropius) 삼촌의 문하생으로 철학을 공부했다. 330년경 메로피우스는 아라비아 해안을 따라 인도까지 항해를 떠났는데, 두 명의 젊은 조카들도 스승과 동반하였다. 순조롭게 항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신선한 음식을 구하기 위해 악숨(Aksum/Axum) 왕국의 주요 항구도시인 아둘리스(Adulis, 오늘날 에리트레아 동부 홍해 연안의 줄라[Zula]에 있었던 고대 도시)에 정박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선원들과 지역 주민 사이에 싸움이 나서 스승과 모든 선원이 학살당했다. 다행히 근처 나무 아래에서 공부하던 두 소년은 살아남아 노예로 붙잡혀 악숨 왕국의 수도인 악숨으로 끌려갔다.

   노예가 되어 왕궁으로 끌려온 두 소년은 다행히 왕의 눈에 들어 오히려 왕의 신하가 되었다. 왕은 아이데시우스에게 궁중 연회에서 술잔 시중을 드는 직책을 맡겼고, 총명했던 성 프루멘시오는 왕의 서기관으로 임명하였다. 임종을 앞둔 왕은 두 젊은이를 자유의 몸으로 풀어주었다. 왕이 죽은 후 어린 에자나(Ezana) 왕자의 섭정을 맡은 왕비의 요청으로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 지방에 계속 머물게 되었다. 그들은 어린 왕자의 교육을 담당하며 왕국의 행정을 도왔다. 왕국 내에서 어느 정도 중요한 직책을 맡았던 성 프루멘시오는 왕국 내의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삶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그리스도인 외국 상인들이 공개적으로 신앙을 실천하고 전례를 거행할 수 있는 성당을 짓고, 원주민들에게도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왕자가 성년이 되어 스스로 왕국을 다스릴 때가 되자 아이데시우스는 고향인 티레로 돌아와 그곳에 머물며 사제가 되었다.

   하지만 성 프루멘시오는 악숨 왕국의 그리스도교 발전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먼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로 갔다. 그리고 그곳의 주교인 성 아타나시오(Athanasius, 5월 2일)에게 악숨 왕국에 선교 사제를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다. 성 아타나시오는 오늘날 에티오피아에 해당하는 악숨 왕국의 복음화를 위한 적임자로 성 프루멘시오를 선택하고 4세기 중엽에 그를 주교로 축성하여 파견하였다. 성 프루멘시오는 여러 선교사와 함께 악숨 왕국의 수도로 돌아와 주교좌를 설립하고 그리스어 성경과 전례문들을 고대 에티오피아 언어로 번역하였다. 그의 선교 활동은 에자나 왕과 그의 동생인 사이자나(Saizana)를 비롯해 수많은 개종자를 얻으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케사테 비르한’(Kesate Birhan, 빛의 계시자) 또는 ‘아바 살라마’(Abba Salama, 평화의 아버지)로 불렸고, 오늘날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총대주교에게 사용하는 ‘아부나’(Abuna, 우리 아버지)로 불리는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티라니우스 루피누스는 그에 의해서 수많은 에티오피아인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고 기록했다.

   한편 356년 아리우스주의(Arianismus)에 호의적이던 콘스탄티우스 2세 황제(337~361년 재위)는 정통교리를 옹호하는 성 아타나시오 주교를 추방하려 했고, 에티오피아도 아리우스파 주교로 교체하려고 악숨 왕국의 에자나 왕과 그의 동생에게 서한을 보내 성 프루멘시오 주교를 추방하라고 요구하였다. 성 아타나시오가 쓴 “아리우스주의자들을 반박하는 호교론”(Apologia contra arianos, Apologia secunda, 357)에 들어 있는 이 그리스어 편지는 티라니우스 루피누스가 자신의 “교회사”에서 성 프루멘시오에 대해 설명한 내용이 실제로 에티오피아에서 일어난 일임을 분명히 입증하는 자료이다. 에자나 왕과 그의 동생은 로마 황제의 요청을 거부했고, 성 프루멘시오는 에티오피아에 남아 계속 주교직을 수행하다가 380년경 선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에티오피아의 많은 지역은 아직 복음화되지 않았지만, 성 프루멘시오는 에티오피아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파한 ‘에티오피아의 사도’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가 전한 복음의 씨앗은 에티오피아에 깊이 뿌리 내려 수 세기 후 이슬람의 침략에도 그리스도교 신앙을 굳건히 지킬 수 있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10월 27일 목록에서 인도에(악숨 왕국의 수도인 악숨을 잘못 표기한 듯) 성 프루멘시오 주교가 있었는데, 그는 그곳에 잡혀 있던 중에 성 아타나시오에 의해 주교로 축성되었고, 그 나라에 복음을 전파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7월 20일로 축일을 옮겨 성 프루멘시오 주교가 에티오피아 지역에 복음을 전파했는데, 처음에는 포로 신세였으나 나중에 성 아타니시오에 의해 주교로 축성되었다고 기록하였다.♣

참고자료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 프루멘시오 주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481-482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2권 - '프루멘시오',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6년, 9135쪽.

사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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