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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리무스(또는 프리모)와 성 펠리치아노(Felicianus)는 귀족 가문 출신의 형제 사이로 3세기 초에 로마에서 태어났다. 그들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세례를 받은 후 동료 시민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들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년 재위)와 막시미아누스 황제(286~305년 재위)의 그리스도교 박해 중에도 자선활동을 하며, 특별히 지하 감옥에 갇혀 고문받고 죽음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들을 방문하여 최선을 다해 위로하고 도왔다. 그러다가 그리스도인임이 드러나자 군인들의 눈을 피해 피신하여 오랫동안 지내다가 결국 우상 숭배를 거부했다는 혐의로 여든 살 무렵에 체포되었다. 그들은 로마의 신상 앞에 희생 제사 바치기를 거부하여 투옥된 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끔찍한 고문을 받았다. 박해자는 그들을 아주 천천히 죽이기 위해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고통을 주다가 로마 외곽의 노멘툼(Nomentus, 오늘날 로마 북동쪽 29km 지점에 있는 멘타나[Mentana])에서 참수하였다. 성 프리모와 성 펠리치아노 형제의 시신은 들판에 버려졌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수습하여 로마에서 약 24km 떨어진 노멘타나 가도(Via Nomentana)에 안장하였다. 그들의 순교 시기는 자료에 따라 3세기 말 또는 4세기 초의 어느 해로 나온다. 그들의 무덤 위에 일찍이 성당이 세워졌고, 그 유적이 17세기까지 남아 있었다. 645년경 6월 9일에 교황 테오도로 1세(Theodorus I)가 그들의 유해를 로마의 몬테 첼리오(Monte Celio)에 있는 산토 스테파노 로톤도(Santo Stefano Rotondo) 성당으로 이장하고 그날을 그들의 축일로 제정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은 6월 9일 목록에서 로마의 몬테 첼리오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막시미아누스 황제 시대에 순교한 성 프리모와 성 펠리치아노를 기념하는데, 이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은 오랫동안 주님을 섬기며 때로는 함께 또는 따로 여러 가지 잔혹한 고문을 견뎌내고 마침내 노멘툼의 총독인 프로모투스(Promotus)에 의해 참수당해 행복한 투쟁을 마무리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로마의 노멘타나 가도 24km 지점에 성 프리모와 성 펠리치아노 순교자가 있다고 기록하였다. 성 프리모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을 타원형으로 둘러싼 열주 위에 세워진 140명의 성인 입상의 주인공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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