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한이형 라우렌티우스(Laurentius, 또는 라우렌시오)는 충청도 덕산에 살던 양반의 자제로 태어났다. 그는 성격이 강직하고 헌신적이며 열성이 지극하여, 14세 때부터 천주교 교리를 배운 지 몇 주일 후 참으로 비상한 열심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는 여러 시간 동안 십자가 앞에서 묵상하였고, 전에 범한 죄를 진실한 마음으로 통회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주일과 축일에는 집에서 10여리 밖에 있는 신자 마을에 가서 그들과 함께 기도하였는데,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거르는 일이 없었다. 그는 21세 때에 신자 처녀와 혼인하고 고향을 떠나 경기도 양지고을 은이 마을로 들어가 숨어 살았는데 신심만 두터운 것이 아니었다. 이들 부부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옷이 남루한 사람을 만나면 자기 옷을 주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집에는 늘 사람들이 몰려와 주막집 같을 정도였다. 사람들이 그에게 지나치게 애긍시사를 한다고 하면 그는 “헐벗은 이웃을 입히고 굶주린 이를 먹이는 것은 거저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때가 오면 천주께서 이자를 듬뿍 붙여 다 갚아 주실 것입니다”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 당시 라우렌티우스는 약간의 밭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무리 일이 바빠도 주일 파공을 철저히 지켰으며, 밤에는 날마다 한 시간 동안 묵상하였고, 사순절에는 매일 단식을 하였다.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가 조선에 들어와 그의 이러한 신덕을 보고는 전교회장으로 임명하였다. 1846년의 병오박해가 시작되자 그는 얼마동안 숨어서 지내기로 하였다. 그러던 중 김대건 신부가 잡힌 후 포졸들은 집주인이 이신규 토마스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잡기 위해 먼저 그의 삼촌을 잡아 조카가 있는 곳을 물으니, 이 토마스의 삼촌이 포졸들을 은이 마을로 안내하였다. 포졸들이 도착했을 때 이미 그 동네 신자들은 도망한 뒤였으므로 그들은 라우렌티우스의 집을 둘러싸고 온 가족을 체포하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이내 놓아주고 라우렌티우스만을 포승으로 묶고 조롱하며 닥치는 대로 때렸다. 특히 그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대들보에 매어단 후 물매질을 하면서 배교하고 동교인들을 대라고 협박하였다. 라우렌티우스가 이를 거절하자 포졸들은 그의 두 다리를 결박하고 그 사이에 깨어진 접시며 질그릇 조각을 끼우고 굵은 밧줄을 발목에 걸쳐서 앞뒤로 잡아당겨 살을 톱질하듯 하였다. 그러나 라우렌티우스가 이러한 잔학한 고문을 잘 참아내며 신음소리 조차 내지 않았으므로 포졸들도 이에 감동하여 다른 신자들에게 “당신들이 정말 천주교 신자가 되려면 한이형과 같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하였다. 그 후 포졸들은 그를 서울로 압송하였는데, 포졸들이 말을 태워 주겠다고 하여도 이를 거절하였고 또 상처 때문에 신발을 신을 수가 없어서 백 여리나 되는 산길을 맨발로 걸어 서울까지 갔다. 그는 서울에서도 전과 같은 고문을 받았으나 조금도 굽히지 않다가 순교하였는데, 그의 죽음은 교수형 혹은 장살에 의한 것이었다고 한다. 때는 1846년 9월 20일(음력 8월 1일)이요, 그의 나이는 46세였다. 그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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