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호아퀴나 데 베드루나는 16세에 변호사인 테오도로 데 마스(Teodoro de Mas)와 결혼하였다. 이 결혼은 매우 행복하였고 8명의 자녀를 낳았으나 그녀는 33세 때에 과부가 되었다. 그 후 10여 년 동안 자녀들의 독립을 도와 준 뒤 그녀는 에스파냐의 카탈루냐(Cataluna)에 수도 공동체를 세우고 간호와 교육에 헌신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소위 "애덕의 카르멜회"이다. 이 수도회의 설립을 지원하고 역설한 성 안토니우스 마리아 클라렛(Antonius Maria Claret, 10월 24일)의 끊임없는 지지로 인하여 이 수녀회는 크게 발전하였다. 그러나 1850년경에 호아퀴나 원장에게 마비 증세가 나타나자, 그녀는 서서히 수녀회의 지도에서 손을 떼었다. 그녀는 1854년 8월 28일 71세의 나이에 콜레라로 선종하여 애덕의 카르멜회 본원에 묻혔다. 성녀 호아퀴나 데 베드루나는 1940년 복자품에 오른 후 1959년 4월 12일 교황 요한 23세(Joannes X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녀의 축일은 5월 22일에 기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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