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에서는 흑사병이 만연되어 한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되는 일이 가끔 있었는데, 이탈리아 노바라(Novara) 교구의 팔란차 지방에도 이런 병이 전파되어 카타리나(Catharina, 또는 가타리나)라는 어린 소녀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병사한 가정이 있었다. 카타리나는 어떤 사람의 도움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밀라네세라는 부인의 양녀로 들어갔다. 그녀가 15살 되던 해에 주님의 수난에 대한 강론을 듣고 크게 감동하여 오로지 주님께 자신의 삶을 봉헌하며 살고자 하였다. 그때 마침 그녀의 양모도 세상을 떠났으므로 카타리나는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가 천주의 모친을 기념하여 밀라노(Milano) 근방 바레세(Barese)에 세운 은수처로 들어갔다. 간혹 남자들이 이 계곡으로 와서 은수생활을 하였으나, 젊은 여성이 이런 황야에서 은수생활을 하기는 지극히 위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15년 동안이나 극도로 엄격한 고행을 하며 독수생활을 하였다. 카타리나는 일 년에 아홉 달을 단식하였고 평상시에도 고기를 입에 대지 않았다. 이런 그녀의 생활을 본받으려는 여성들이 몰려와서 그녀의 제자들이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의 규칙을 따르는 수도 공동체를 세웠는데, 이것이 산타 마리아 디 몬테(Santa Maria di Monte) 수녀원이다. 카타리나는 40세에 운명하였는데, 그녀의 예언의 은사가 유명했다고 전해온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769년에 승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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