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폰티아누스(Pontianus, 또는 폰시아노)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때 이탈리아 중부 스폴레토에서 고난을 겪고 순교했다. 스폴레토 주교좌성당에 보존된 “순교록”에 따르면, 그는 스폴레토 지역 귀족 출신으로 18세의 젊은이였다. 그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때문에 재판관 파비아누스(Fabianus) 앞에 끌려가 신앙을 거부하기보다는 용감하게 고문과 죽음을 선택했다. 로마 순교륙은 그의 고통의 과정을 비교적 상세히 전해주고 있다. 그는 재판관의 명령으로 난폭하게 채찍질을 당하고, 맨발로 불타는 석탄 위를 걸어갔다. 하지만 불 위에서 아무런 해도 입지 않자, 그를 고문대 위에 올려놓고 철제 갈고리로 살점을 긁어댄 후 사자가 기다리는 지하 감옥에 던져버렸다. 그런 다음 납을 녹여 입에 붓는 등 잔혹한 형벌이 이어졌다. 그런데도 끝까지 굴복하지 않자 결국 참수형으로 그의 목숨을 끊었다. 성 폰티아누스의 시신은 도시 성벽 밖 공동묘지에 묻혔고, 후에 그 무덤 위에 그를 기념해 성당이 건립되었다. 그리고 성당 옆으로 베네딕토회 수도원이 건립되어 성지를 돌보는 책임을 맡았다. 966년에 네덜란드 남서부 위트레흐트(Utrecht) 교구의 발데리코스(Baldericus) 주교가 로마를 방문하면서 여러 성당과 수도원을 둘러보고 자신의 교구를 위해 여러 성인의 유해를 구했는데 그중에 성 폰티아누스의 유해 일부도 있었다. 그는 돌아가서 주교좌성당에 그의 유해를 모시고 교구의 공동 수호성인으로 지정해 공경했다. 이런 이유로 성 폰티아누스는 스폴레토와 위트레흐트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또한 스폴레토에서 지진의 위험에서 보호해주도록 전구를 청하는 성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고대 전승에서부터 발전된 것으로, 성 폰티아누스가 죽기 전에 “스폴레토는 흔들릴 것이나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예언했기 때문이다. 실제 1703년 그의 축일에 시작된 지진이 3주 정도 계속되면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스폴레토에서는 한 명의 사망자도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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