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코포 피에쉬(Giacopo Fieschi)와 프란체스카 디 네그로(Francesca di Negro)의 딸인 성녀 카타리나(Catharina, 또는 가타리나)는 이탈리아의 제노바에서 태어났는데, 5명의 자녀 가운데 막내딸이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아우구스티노회 수녀였던 언니의 영향으로 수도생활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지만, 부모님의 염원으로 16세의 나이에 줄리아노 아도르노(Juliano Adorno)라는 제노바 출신 상류층 젊은이와 결혼을 했다. 그녀의 남편은 신앙도 없고 사나운 성경에 낭비벽이 심했다. 반면 그녀는 민감하고 신중하였으며 거의 유머가 없었으나, 그렇다고 매몰스런 여인은 아니었다. 불행했던 그녀의 결혼생활은 10년이 지나면서부터 남편의 방탕으로 인해 극도의 가난에 빠지게 되었고, 성녀 카타리나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 병상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1473년 성녀 카타리나는 고해성사를 하던 중에 자신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강하게 느끼는 신비체험을 하고 회개하게 되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회개를 경험한 남편과 함께 제노바 병원에서 환자들을 위해 사심 없는 봉사를 시작했다. 남편은 후일 프란치스코회 제3회 회원이 되었다. 여전히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부부는 아예 제노바에서 큰 규모인 팜마토네(Pammatone) 병원에서 애덕을 실천하는 일에 자신들을 봉헌하기로 결심했다. 특히 성녀 카타리나는 뛰어난 영성생활로 다른 이들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고, 1490년에는 병원장이 되었다. 이 무렵 그녀는 흑사병으로 거의 사경을 헤매기도 했으나 기적적으로 회복하자 자신의 직책에서 사임했다. 그 후 1년 뒤에 남편도 세상을 떠났다. 이때 그녀는 자신의 영적 지도자가 된 카타네오 마라보티(Cattaneo Marabotti) 신부를 만나 자신이 경험한 수많은 신비 체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병이 악화돼 극심한 고통을 받았지만 그녀의 신심은 비범했다. 그녀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천상적 사물을 관상하는 뛰어난 영성가였다. 그녀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악으로 서서히 물드는 세상의 오염’이었고, 인간을 하느님에게서 떼어놓는 마귀의 간계였다고 한다. 그녀의 가르침을 담은 “영혼과 육신의 대화”, “영혼론”은 신비신학 분야에서 유명한 저서가 되었다. 이 책들이 1934년에 영국에서 간행된 바 있다. 1510년 9월 15일 제노바에서 선종한 성녀 카타리나는 1675년 교황 클레멘스 10세(Clemens X)에 의해 시복되었고, 1737년 교황 클레멘스 1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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