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 교황표”(Liber Pontificalis)에 따르면 성 레오 4세는 롬바르드족 혈통의 로마인인 라도알도(Radoaldo)의 아들로 성 마르티노(Martinus)의 베네딕토회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고 수도승이 되었다. 그는 교황 그레고리오 4세(Gregorius IV) 밑에서 차부제가 되었고, 교황 세르지오 2세(Sergius II) 때에 추기경 사제가 되었다. 847년 1월 27일 교황 세르지오 2세(Sergius II)가 선종한 후 그는 새 교황으로 선출된 그의 첫 임무는 사라센족의 침략으로부터 로마를 구하는 것이었다. 이미 사라센족은 테베레강까지 쳐들어 와 성 바오로(Paulus) 대성전을 초토화했다. 성 레오 4세 교황은 로마를 지키기 위해 성채를 보수하고 강화하면서 849년 오스티아(Ostia) 해전에서 사라센족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안겨주었다. 그리고 854년에 사라센족에 의해 황폐해진 로마의 항구도시를 재건하고 레오폴리스(Leopolis, 오늘날의 치비타베키아[Civitavecchia])라고 불렀으며, 테베레강 어귀 포르토(Porto)에도 요새 도시를 건설해 로마의 안전을 지켰다. 그는 위대한 건축가로서 도시뿐만 아니라 여러 교회를 복원하거나 새로 건축하였다. 교황 성 레오 4세는 매우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람이었으며 인내심도 있고 겸손했다. 만일 그의 이러한 면모가 없었더라면 정치적으로 격동기를 거치는 동안에 그의 영적 위대성은 잊혀 버렸을 것이다. 그는 교회 회의를 통해 성직자의 규율을 강화하고 개혁을 추진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뛰어난 설교가였으며 로마 교회 안에 성가를 적극적으로 장려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보르고 마을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십자가를 그어 불을 껐다고 한다. 또한 사도 성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부인한 것을 상기시켜 주고자 성당 첨탑에 수탁 모형을 배치하도록 했다. 옛 “로마 순교록”은 7월 17일 목록에서 성 레오 4세 교황이 로마에서 선종했다고 짧게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로마의 성 베드로(Petrus) 대성당에 도시의 수호자이자 베드로의 수위권을 강화한 성 레오 4세 교황에 안장되어 있다고 기록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