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그레고리우스 바르바리고(Gregorius Barbarigo, 또는 그레고리오)는 1625년 이탈리아 베네치아(Venezia)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당시 유럽에서는 개신교와 가톨릭 신자들간의 맹렬한 전쟁이 7년간 지속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30년 전쟁의 시작이었다. 성 그레고리우스는 베네치아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20대 초반에 베네치아 정부의 대사인 루이지 콘타리니(Luigi Contarini)가 독일의 뮌스터(Munster)로 파견되는 데 동행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1648년 베스트팔렌(Westfalen) 조약이 이루어졌다. 그 회의에서 교황 대리인 파비오 치기(Fabio Chigi)는 예외적으로 젊은이였던 성 그레고리우스를 발견하고 그와 친구가 되었다. 성 그레고리우스는 1655년 사제 서품을 받고, 1657년 흑사병이 창궐하던 시기에 대담하게 활동하였다. 파비오 치기가 교황 알렉산데르 7세(Alexander VII)로 선출되었을 때 그는 뮌스터에서 만났던 베네치아 출신의 성 그레고리우스에 대한 인상을 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성 그레고리우스를 이탈리아 베르가모(Bergamo)의 주교로 임명하였다. 3년 후인 1660년 추기경으로 승품된 성 그레고리우스는 1664년 파도바의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그곳에서 33년간 봉직했다. 성 그레고리우스는 탁월한 교회의 사람이었고 정치가였다. 그는 종교개혁 시기에 그리스도교의 재일치를 위해 노력했고, 사제 양성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추진하여 신학생들을 위한 좋은 대학과 신학원을 세웠고, 자체 출판사를 설립했으며, 교부들의 작품에 대한 지식이 있는 이들과 성서를 아는 인물들을 교사로 임명하였다. 그 출판사에서 출판한 몇몇 작품은 이슬람 국가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해졌다. 그의 자선행위는 실로 엄청나고 지속적이었다. 성 그레고리우스의 사목적 헌신은 성 카롤루스 보로메오(Carolus Borromeo, 11월 4일)의 헌신에 견줄만했다. 자신에게는 엄격하면서도 타인에게는 친절하여 곤경에 처한 이들을 큰 열정으로 도왔다. 추기경으로서 그는 다섯 번의 교황선거에 참여했고, 유력한 교황 후보로 손꼽히기도 했다. 그는 선종하여 파도바의 대성전에 묻혔다. 그는 1761년 복자품에 올랐고, 1960년 교황 요한 23세(Joannes XXIII, 6월 3일)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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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성인명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수 |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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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그레고리오 바르 ...] | 성 그레고리오 바르바리고 추기경 | 주호식 | 2015/06/14 | 234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