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루도비카 드 마리약(Ludovica de Marillac)은 1591년 8월 12일 프랑스 북부 우아즈(Oise) 지방의 르 뮤(Le Meux) 인근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혼외 관계로 태어나 평생 어머니가 누구인지 모른 채 아버지 루이 드 마리약(Louis de Marillac)과 함께 귀족 가문의 일원으로 성장했다. 아버지의 첫 번째 결혼(사별)과 두 번째 결혼 사이에 태어난 성녀 루도비카 드 마리약은 아버지가 재혼한 후 도미니코회 수녀인 숙모가 있는 파리 인근 푸아시(Poissy)의 왕립 수녀원으로 보내져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런데 12살 때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형편이 어려워져 수녀원 기숙사를 나와 하숙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곳에서 그녀는 가사 일과 허브로 약을 만드는 비법 등을 배웠고, 귀족의 삶에서 서민의 삶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다. 수녀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파리의 카푸친회 수녀원에 입회를 신청했으나 건강 문제 등 여러 이유로 거부되었다. 결국 가족들의 권유로 1613년 22살이 나이에 당시 프랑스 여왕의 비서였던 앙투안 르 그라(Antoine Le Gras) 백작과 결혼하여 아들 하나를 낳았다. 프랑스의 왕족과 귀족들 안에서 평온하고 행복한 삶을 살던 그녀의 결혼 생활은 12년밖에 이어지지 않았다. 건강이 안 좋았던 남편이 1625년 12월에 사망하고, 내전 등으로 혼란한 시기에 숙부들마저 처형당하거나 옥사하는 일이 생기면서 그녀는 실의에 빠져 심각한 우울증까지 겪게 되었다. 그러나 기도 중에 공동체 안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며 살게 될 것이라는 환시를 보았고, 뜻하지 않게도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Franciscus Salesius, 1월 24일) 주교에게 영적 지도를 받는 계기가 생기면서 삶의 일대 전환기를 마련하였다. 그녀는 평소 부유한 귀족 부인들과 함께 자선 활동을 하며 잘 알고 지냈던 성 빈첸시오 드 폴(Vincentius de Paul, 9월 27일) 신부를 찾았다. 그 당시 성 빈첸시오 드 폴은 1625년에 설립한 ‘선교 사제회’(라자로회, Lazarists)를 중심으로 시골의 농부들을 대상으로 교리를 가르치고 성사를 집전하며 선교활동을 전개했고,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해 본당 단위의 ‘애덕회’를 조직해 활동하고 있었다. 성 빈첸시오 드 폴의 초대와 지도로 남편과 사별한 슬픔을 딛고 가난한 이들을 도우며 살게 된 성녀 루도비카 드 마리약은 내적 치유를 경험하며 앞으로의 사도직을 준비하였다. 그녀는 1629년부터 시골의 애덕회를 방문하고 격려하는 일을 담당했다. 성 빈첸시오 드 폴은 성녀 루도비카 드 마리약의 소망을 받아들여 1633년 젊은 처녀들을 모아 ‘애덕의 수녀회’를 설립하고 그녀를 초대 수녀원장으로 임명하였다. 이 수녀회가 오늘날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The Daughters of Charity of St. Vincent de Paul)라고 불리는 수녀회이다. 그때부터 그들의 수도원은 병원이요, 성당은 교구 내의 모든 성당이며, 봉쇄 구역은 길거리가 되었다. 회칙 초안도 그녀가 작성하였다. 그녀의 명석한 두뇌와 관대한 사랑은 이 수녀회의 급속한 성장을 예고하고 있었다. 성 빈첸시오 드 폴 신부가 선종하기 6개월 전인 1660년 3월 15일, 성녀 루도비카 드 마리약은 병으로 고생하다가 파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바로 길 건너편에 살았던 성 빈첸시오 드 폴 신부도 병으로 쇠약해져 그녀의 임종을 직접 지켜보지 못하고 동료를 보내 평화의 인사를 전했다. 그녀가 선종할 당시 프랑스 내에는 이미 40개 이상의 수녀원이 있었고, 병자와 가난한 이를 돕는 구호소는 훨씬 더 많았다. 그녀는 이런 말을 남겼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봉사하라. …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을 부끄럽게 하지 말 것이다. 그대가 섬기는 이는 곧 그리스도이시니…” 그녀는 1920년 5월 9일 교황 베네딕토 15세(Benedictus XV)에 의해 시복되었고, 1934년 3월 11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리고 1960년 교황 성 요한 23세(Joannes XXIII)는 그녀를 그리스도교 사회복지사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그녀의 유해는 파리의 뤼 뒤 박(Rue du Bac)에 있는 애덕의 수녀회 모원 성당(기적의 메달 성모 성당)에 안치되었다. 성녀 루도비카 드 마리약의 축일은 옛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선종한 날인 3월 15일에 기념했었는데, 매년 사순시기 중간에 축일이 있는 관계로 교황청 시성성(현 시성부)은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의 요청을 받아들여 복자품에 오른 날인 5월 9일로 변경하여 기념하도록 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른 보편 전례력 개정과 그 정신을 반영해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교회의 전통대로 선종한 날인 3월 15일 목록에서 그녀에 대해 전해주었다. 즉, 프랑스 파리에서 미망인인 성녀 루도비카 드 마리약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사랑의 딸 수도회를 솔선하며 모범적으로 이끌어 성 빈첸시오 드 폴이 시작한 일을 온전히 완성했다고 기록하였다.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에서는 이전처럼 5월 9일에 그녀의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성녀 루도비카 드 마리약은 프랑스에서 성녀 루이즈 드 마리약(Louise de Marillac)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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