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바이에른(Bayern) 지방에서 태어난 성 고데하르두스(Godehardus, 또는 고데하르도)는 그의 아버지가 일하고 있던 니더 알타이흐(Nieder-Altaich) 수도원의 참사회에서 교육을 받고 후에 참사회 의장이 되었다. 그는 990년에 사제 서품을 받고 베네딕토회 니더알타이크 수도원의 수도승이 되었다. 996년 수도원장이 된 그는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하여 수도원의 규율을 바로 잡았다. 이 사실을 높이 평가한 성 헨리쿠스 2세(Henricus II, 7월 13일) 황제는 그에게 다른 많은 수도원의 개혁작업을 맡겼다. 그는 이 모든 일들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였다. 1022년 힐데스하임의 성 베른바르두스(Bernwardus, 11월 20일) 주교가 선종하자 그가 후계자로 임명되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는 교구의 성직사회를 정화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주교좌 학교 건립에도 큰 기여를 하였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집을 만들어 구호사업에도 헌신하였다.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잇는 터널과 철도는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는데, 그 이유는 성 고데하르두스가 세운 여행자 숙박소가 인근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타르두스(Gothardus)로도 불리는 그는 1131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2세(Innocenti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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