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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첼로 1세(1.16)

마르첼로 1세(1.16)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인쇄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마르첼로 1세 (Marcellus I)
축일 1월 16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교황, 증거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309년
같은이름 마르셀로, 마르셀루스, 마르첼루스, 마르켈로, 마르켈루스
성인 기본정보

   성 마르첼루스(또는 마르첼로)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년 재위)의 박해와 로마 교회 내부의 분열로 인해 304년에 교황 성 마르첼리노(Marcellinus, 4월 26일)가 순교(?)한 후 3년 6개월 동안이나 공석으로 있었던 교황좌의 새 주인으로 선출되었다. 막센티우스 황제(306~312년 재위)가 등극하면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어느 정도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 후임 교황 선거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성 마르첼리노 교황 때 지도자적 임무를 수행한 사제 성 마르첼로가 교황으로 선출된 것이다. 그의 재위 기간은 학자들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308년 5월 27일부터 309년 1월 16일까지로 불과 8개월이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다. 성 마르첼로가 교황으로 재위한 시기는 박해로 인해 신자들의 집회 장소와 묘지가 압수당하는 등 로마 교회가 피폐해졌고,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혼란과 분열에 빠진 교회의 현실과 마주해야 했던 때였다. 왜냐하면 박해 시기에 신앙을 떠났던 배교자들이 정해진 속죄 기간을 다 채우지 않고 다시 신자 생활에 참여하길 강력히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런 복잡한 상황 속에서 교황 성 마르첼로는 교회를 재정비해야만 했다. “연대 교황표”(Liber Pontificialis)에 따르면 그는 로마 교회를 각각 한 명의 사제가 파견되는 25개의 본당으로 재조직하고, 본당 사제를 중심으로 예비신자의 세례를 준비시키고 배교자들에게 규정된 속죄 행위를 엄격히 실행하도록 했다. 또한 새 주교와 사제들을 서품하고, 성녀 프리스킬라(Priscilla) 카타콤바 반대편에 있는 살라리아 가도(Via Salaria)에 새 묘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교회를 재정비하려는 그의 노력은 배교자들을 교회에 다시 받아들이는 문제로 인해 큰 혼란과 장벽에 부딪혔다. 교황 성 다마소 1세(Damasus I, 12월 11일)가 쓴 비문에 의하면, 그는 배교자 수용 문제에 있어서 엄격한 속죄 행위를 요구한 엄격주의자였다. 그로 인해 헤라클리우스를 중심으로 한 배교자들과 신자들 사이에 심각한 다툼이 유혈 충돌로까지 번졌다. 결국 막센티우스 황제는 배교자들의 고발에 따라 성 마르첼로 교황을 체포해서 평화의 파괴자란 죄목으로 유배를 보냈다. 얼마 뒤에 성 마르첼로 교황은 장소가 알려지지 않은 유배지에서 사망했고, 그의 시신은 로마로 옮겨져 박해 기간에 징수되지 않았던 개인 묘지인 성녀 프리스킬라 카타콤바에 안장되었다. 교황 성 마르첼로의 최후에 대한 이런 내용은 “리베리오 교황표”(Catalogus Liberianus)의 기록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5세기에 기록된 “마르첼로의 수난”(Passio Marcelli)이나 “연대 교황표” 등은 교황 성 마르첼로의 최후에 대한 다른 전승을 전해주었다. 그에 따르면 성 마르첼로 교황은 교회를 재조직하고 주교 직분을 지키면서 로마의 신상 앞에 희생제물을 바치라는 요구를 거부했다. 이에 격분한 막센티우스 황제는 루치나(Lucina)라는 후원자가 라타 가도(Via Lata)에 있는 자신의 집을 봉헌해 세운 ‘마르첼로 성당’을 마구간으로 개조하고, 교황을 그곳에서 마부로 일하게 했다고 한다. 그곳에서 교황 성 마르첼로는 신앙을 지키며 노예처럼 일하다가 사망했다고 한다. 5세기의 “예로니모 순교록”(Martyrologium Hieronymianum)도 그가 ‘증거자’로서 죽었다고 기록하였다. 이런 상이한 자료로 인해 19세기 이후 성 마르첼로 교황에 대한 논증은 계속되고 있다. 성 마르첼로를 성 마르첼리노 교황과 같은 사람으로 보기도 하고, 성 마르첼로를 교황좌가 공석이었던 동안 준교황(quasi-pope)의 역할을 한 사제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성 마르첼로가 사망하고 약 40년 뒤에 편집된 “리베리오 교황표”에 두 명 다 교황으로 기록되어 있고, 성 다마소 1세의 헌시에도 주교에게만 사용하는 ‘감독자’(rector)로서 성 마르첼로를 묘사하는 점에서 그가 교황으로 실존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옛 “로마 순교록”은 1월 16일 목록에서 로마의 살라리아 가도(Via Salaria)에 가톨릭 신앙을 고백한 순교자 성 마르첼로 교황이 있는데, 그는 막센티우스 황제의 명령으로 곤봉으로 매를 맞은 후 경비병의 감시하에 동물을 돌보는 곳으로 보내져 털옷을 두른 채 노예와 같이 일하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로마의 살라리아 가도(Via Salaria Nuova)에 있는 프리스킬라 묘지에 교황 성 마르첼로 1세가 묻혔는데, 교황 성 다마소 1세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진정한 목자였으며 그가 확립한 배교자의 속죄 행위를 거부하고 불명예스럽게 비난한 배교자들의 반대로 폭군에 의해 쫓겨나 유배지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309년에 사망한 그에게 순교자라는 호칭을 붙이지는 않았다.♣

참고자료

  • 야코부스 데 보라지네 저, 변우찬 역, 황금 전설 : 성인들의 이야기 - '성 마르첼로', 서울(일파소), 2023년, 160쪽.
  • 존 노먼 데이비슨 켈리 / 마이클 월시 저, 변우찬 역, 옥스퍼드 교황 사전 - 마르첼로 1세, 왜관읍(분도출판사), 2014년, 66-67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4권 - '마르첼로 1세',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1997년, 2346-23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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