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마르첼리누스(또는 마르첼리노)는 296년에 교황 성 카이우스(Caius, 4월 22일)를 계승하여 로마(Roma)의 주교인 교황좌에 올랐다. 그의 생애나 재임 기간 등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연대 교황표”(Liber Pontificalis)에 따르면, 그는 프로젝투스(Projectus)의 아들로 로마인이며 순교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는 303년 로마에서 시작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를 받지 않고 선종한 뒤에, 사제 마르첼루스(Marcellus)에 의해 로마의 비아 살라리아(Via Salaria)에 있는 성녀 프리스킬라(Priscilla) 카타콤바에 묻혔다고 한다. 그로부터 100년 정도 후인 4세기 초에 교황 성 마르첼리누스가 박해 시기에 일시적으로 배교를 했고, 박해자에게 성경을 넘겨주었다는 악의적 주장이 주로 도나투스파(Donatismus) 이단 신봉자들에 의해 퍼뜨려졌다. 하지만 히포(Hippo)의 주교인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8월 28일)는 이 같은 주장이 잘못된 중상모략임을 강력히 피력했다. 교회사가인 에우세비우스(Eusebius) 역시 그를 ‘박해를 극복한 교황’이라고 했고, 키프로스의 주교인 테오도레트(Theodoret)도 그가 박해 중에 훌륭한 역할을 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교황 성 마르첼리누스의 배교 주장을 근거 없는 거짓으로 생각하고 있다. “로마 순교록”(Martyrologium Romanum)은 4월 26일 목록에서 다른 전승을 전해주고 있다. 교황 성 마르첼리누스가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로마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때문에 참수형을 선고받고 성 클라우디우스(Claudius), 성 키리누스(Cyrinus), 성 안토니누스(Antoninus)와 함께 순교했다는 것이다. 연대 교황표에 따르면, 그는 4월 1일 순교한 후 25일이 지난 4월 26일 비아 살라리아에 있는 성녀 프리스킬라 카타콤바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이와는 달리 “리베리오 교황표”(Catalogus Liberianus)는 10월 25일을 순교일로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10월 25일에 성인의 두 번째 축일을 기념하기도 한다. 동방 교회는 6월 7일에 교황 성 마르첼리누스와 동료 순교자들을 기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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